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가슴 깊은 곳에 품고 살아갑니다. 이런 질문은 삶의 중요한 고비마다 의식의 표면 위로 떠오릅니다. 이른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지요. 그런데 너무 일찍 이런 물음과 맞닥뜨린 소년이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 프랑스의 가정으로 입양된 흑인 아이입니다. 백인 양부모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면서도 소년은 내내 가슴이 시립니다. 이런 심각한 주제를 서정적인 분위기와 시적인 문장으로 끌고 간 작가의 역량과, 등장인물들의 미묘한 심리를 섬세한 선과 무채색 톤으로 표현한 화가의 시선이 돋보이는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 질문이 시작되다
" 이곳에선 피부색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나는 하얀 피부도 하얀 발도 없지요." [까만 아이]를 여는 프롤로그의 첫 대목입니다. 옮긴이에 따르면, 여기서 '하얀 발'은 프랑스 작가 샤를 페로가 수집해서 펴낸 민속동화 [빨간 모자]에서 주인공 여자아이가 늑대에게 하는 말 "내게 하얀 발을 보여 줘."에서 나온 표현이랍니다. 무심코 읽는 동화의 한 장면조차 입양된 흑인 소년에게는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게지요. 짧은 프롤로그이지만, 소년의 상황이 압축적으로 제시됩니다. 한 발자국만 집 밖으로 나가면 외계인처럼 느껴지는 나, 온통 어둠과 침묵에 둘러싸인 나, 그런데 나는 왜 이곳에 있게 되었을까요? 앞을 못 보는 엄마는 혹시 나를 백인 천사로 여기는 것이 아닐까요?
* 가족과 이웃 사이에는 벽이 있다
[까만 아이]는 일인칭 화자의 시선과 내적 독백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일인칭 화자는 '나'라고만 제시될 뿐, 끝까지 이름이 밝혀지지 않습니다. 양부모에게는 '우리 아들'로 불리지만, 친구들마저 '초콜릿'이나 '흑인 꼴통'이라는 별명으로 부릅니다. 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점잖은 편입니다. 옆집 아저씨는 아예 대놓고 '검둥이 자식'이나 심지어 '더러운 검둥이 짐승'이라고 욕하니까요. 아니, 어쩌면 옆집 아저씨는 그나마 솔직한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아기 때 입양되어 이 마을로 처음 왔을 때는 예쁜 아기라며 앞다투어 안아 주었다는 사람들이, 어느새 키가 껑충하고 새까만 소년으로 자라나자 수상한 눈길을 던지며 문을 닫아걸기 시작하니까요. 양부모가 이 아이를 사랑해 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선한 의지만으로 울타리를 넘어 세상과 맞닥뜨리는 일은 너무도 힘겹습니다. "세상이 아름답고 아이들은 착하다고 엄마 아빠가 믿는 한" 소년은 혼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 생일날에 있었던 일
작 은 마을의 코딱지만 한 학교에서도 소년은 피부 검은 피부 때문에 유독 눈에 띄는 아이입니다. 차라리 암탉과 색깔이 같거나, 암소와 생김새가 비슷하다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이지요. 그러니 들판이나 숲으로 가서 혼자 쏘다니는 것이 더 마음 편할 수밖에요. 마음 굳게 먹고 학교에 나갔더니 소년에게 냄새가 난다고 빈정거립니다. 흑인에게선 깜깜한 밤 냄새가 나고, 백인에게선 눈 냄새가 난다는 거지요. 마침 이날은 생일날이라 소년은 작은 사진기를 선물로 받습니다. 아빠는 지금 아름다운 것들을 사진으로 찍어 두자고 합니다. 저녁이 되어 엄마와 나누는 대화도 정겹고 애틋합니다. 하지만 그런 다음, 큰 소동이 난 옆집에서 겪은 일은‥‥‥. 알고 보니 그 집 부부는 아기를 잃어버린 말 못 할 아픔을 안고 있었습니다.
* 내일의 꿈을 꾸다
잠자리에 들자마자 소년은 꿈을 꿉니다. 옆집 부부에 대한 꿈을 꾸고, 고향인 아프리카 꿈도 꿉니다.
땀에 흠뻑 젖은 채 잠에서 깨어나 보니 아직 한밤중입니다. 소년은 이번엔 내일을 꿈꿉니다. 아침 해가
떠 오르기 전에 소년은 몰래 집을 나설 겁니다. 아직 깊은 잠에 잠겨 있는 마을을 벗어나 언덕을 오를 겁니다. 그리고 가장 높은 바위 위에 걸터앉아 사라진 옆집 아기 생각을 하고, 양부모 생각을 하고, 아프리카에 있다는 친부모 생각도 할 겁니다. 이윽고 동이 트면서 형형색색의 빛깔들이 교차하는 하늘을 바라볼 겁니다. 작품의 마지막 장에 실린 장면들은 모두 미래형 시제로 묘사됩니다. 소년이 정말 집을 나설지, 그런 다음에 집으로 돌아올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까만 아이]의 결말은 열려 있습니다. 아마도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누구에게나 삶이란 미지의 길을 걷는 과정이겠지만, 이 소년이 걷게 될 길은 한결 쓸쓸하고 막막할 것만 같습니다. 그래도 온갖 빛깔들이 어우러지면서 하루가 시작되는 장면을 사진에 담는 행위에서 우리는 소년이 꿈꾸는 내일에 대한 소망을 엿봅니다.
* 5월 11일은 '입양의 날'
아동 심리를 연구한 학자들에 따르면, 아기 때 버림받은 상처의 경험은 평생 동안 따라다닌다고 합니다. 의식의 층위에는 남지 않더라도, 무의식의 깊은 곳에는 남는다고 합니다. 자신도 잘 모르는 가운데 마음 속에 불안과 두려움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는 것이지요. 입양이라는 문제는 이처럼 쉽지 않은 주제입니다. 부모가 아이를 다른 나라로 보내거나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는 데에는 가난, 질병, 전쟁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요. 그런데 부끄럽게도 대한민국은 아직까지도 '고아 수출대국'으로 손꼽히는 나라입니다. 1958년 이후 해외로 입양시킨 아이들만 해도 16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떠나보낸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유난스러울 정도로 핏줄을 따지는 우리 사회가 정작 우리 안의 상처에 대해서는 남의 일인 듯 눈감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