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적으로 말하면 세월호 대리 선장은 살인자였고 선장과 함께 탈출하여 살아남은 승무원들은 살인방조자들이었다.
이 사고의 일차 책임은 선장에게 있고 2차 책임은 선주인 청해진 해운회사에 있다. 일생에 단 한번뿐인 수학여행에 나선 고교 2학년생들은 설레임과 꿈에 부풀어 있었을 것이다. 이 아이들은 6800톤 이상 나가는 고급 크루즈 선도 처음 타보았을 것이다.
그 러나 이 아이들이 가진 희망과 꿈을 앗아간 이는 거칠기로 유명한 맹골수로 물길이 아니었다. 이 아이들의 생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장 먼저 탈출한 선장과 승무원들, 그리고 청해진 해운회사가 이 아이들의 꿈과 넋을 빼앗아 갔다. 그래서 이들에게 살인죄 혐의가 부여된들 노여움과 분노가 결코 사라질 리가 없다.
특 히 선장이라는 작자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일반승객으로 위장한 채, 가장 먼저 탈출하여 병원에서 휴식을 취하며 젖은 돈을 말린 선장과 함께 탈출한 승무원들은 모두가 살인공범들이었다. 또한 칭병(稱病)을 핑계 삼아 사고 이틀 후에야 모습을 드러낸 선주의 파렴치하고 도덕불감증에 걸린 청해진 회사의 사장도 예외는 아니다.
선 박에서 선장에게 부여된 지위와 책임은 너무나도 막중하며 절대적인 것이다. 법에서도 그렇게 정의하고 있다. 선박 내에서의 선장의 지위란 누구도 간섭해선 안 되는 치외법권적인 독립적 권한과 책임을 가지게 마련이다. 선장에게 무한대의 권한이 주어지는 이유도 사고가 발생할 경우,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챙겨야 하는 당위적인 책무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상식이다.
그 러나 다른 대형 선박에 있는 이 모든 권한과 책임이 세월호에서 만은 예외였다. 세월호가 바닷물 속으로 서서히 기울어지기 시작하여 침몰할 당시에도 대리 선장은 조타실에 없었다. 선장이 잡고 있어야 할 키는 입사 4개월 차 신입인 3등 항해사가 잡고 있었다. 그 시간 선장은 일등 항해사를 비롯한 몰염치한 인간들과 탈출을 감행하고 있었고, 그 시간 ‘가만히 있으라’ 는 안내 방송만 철석같이 믿고 선실에 갇혀 구원의 손길만 애타게 기다리던 꽃다운 학생들과 일반 승객들은 침몰하는 세월호와 함께 차디찬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역시 인재였다. 인재의 기저에는 "설마'라는 요행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선사는 화물적재 중량도 속였고, 승선 인원도 속였다. 배의 설계도 임의로 고쳐 복원력을 상실하게 만들었고, 화물을 고정시키는 매조짐도 근성으로 일관했다.
선 장은 대리운전수에 불과했고, 책임감과 도덕성이 전혀 없는 승무원들은 자신만이 살기에 바빴고, 구명보트는 아예 작동하지도 않았다. 이런 정황들을 미루어 볼 때, 이렇게 큰 대형 선박이 설마 사고야 나겠는가라고 하는 타성과 관행이라는 악성바이러스가 존재하고 있었기에 선사는 비상시에 대비한 구난 훈련을 제대로 하지 않았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이 된다. 그야말로 총체적 부실관리와 근성근성으로 대형 선박을 운행했음이 드러난 것이다.
다 시 사고당시로 돌아가 보면, 선장은 사고가 발생하자 제주해경에 알리기에 앞서 회사에서 받을 문책이 두려운 나머지 어쩌면 회사에 먼저 이 상황을 보고를 했을지도 모른다. 이 보고를 받은 회사는 승객의 안전보다 경제적인 손실과 회사의 이미지에 데미지를 입는 것을 더 우려한 나머지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도 수사당국은 반드시 수사를 해야 할 대목이다.
우 리사회 곳곳에는 수십 년 간이나 내려온 관행이 뿌리 박혀있었다. 매사에 매뉴얼대로 일을 처하면 바보 멍청이 소리를 듣게 되는 현상이 비일비재했다. 정해진 절차를 무시하고 속성 지름길로 일을 처리하면 유능하다는 소리를 듣는 만성병이 곳곳에 도져있었다. 특히 관료사회의 몸보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 눈치 저 눈치를 보면서 몸에 베인 것이라곤 복지부동뿐이었다.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바로 그 정황 증거인 것이다.
세 월호의 선장과 승무원들이 제대로 된 수칙을 행동으로 옮겼다면 설령 배는 잃었겠지만 승객들의 귀중한 생명만은 구해 냈을 것이다. 평소에 조난 구조 시물레이션을 해보지 않았던 공무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조난 현장에 나타난 각 부처의 공무원들을 보면 수십 년 간 관료사회에 뿌리박힌 병폐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현 정부는 이제 출범한지 일 년 조금 지났다. 정부는 이런 대형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그토록 안전을 강조했다.
하지만 수십 년 간 뿌리박혔던 관료사회의 고질병을 치료하기엔 일 년 남짓한 기간은 너무나도 짧았음이 증명되었다. 모든 것을 뜯어 고치기에는 지난 일 년은 너무나도 짧은 기간이었다는 점에서 현 정부만을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 번 사고가 우리에게 주는 과제는 실로 엄중하다. 어쩌면 이번 사고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자, 우리 모두가 참회하고 반성해야할 매우 어려운 숙제가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더 이상 할말을 잊게 만드는 이번사고의 실종자와 실종자 가족들에게 다시 한 번, 기적의 순간만이 일어나길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담은 기도와 기원을 맹골수로의 용왕님께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