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홍콩은 내게 왕가위의 도시였다.
그곳에 가면 가발을 뒤집어쓴 채
밤에도 선글라스를 벗지 않는 임청하 같은 고독한 도시 여자들이 있고,
양조위처럼 흰색 팬티와 메리야스가 잘 어울리는 잘생긴 경찰관이 있을 거라고,
물론 소독저처럼 깡마른 왕비같은 여자가 종업원으로 있는
심야 샌드위치가게도 있을 거라고 믿었다.
마마스 앤 파파스. 캘리포니아 드림.
중국으로 반환되기 전 불안한 사람들의 눈빛.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들과 벽 위에 덕지덕지 매달린 무수히 많은 간판.
홍콩에 대한 내 환상의 팔 할은 왕가위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나처럼 1990년도에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 홍콩은
'누군가의 도시'로 기억되는 곳이다.
그곳은 이빨로 성냥개비를 씹으며 바바리코트 속에 권총을 넣고
어둠의 도시를 걷던 주윤발의 느와르풍 도시이거나,
세상에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목선을 가진 여자로 기억되었던
장만옥의 서정도시일 수도 있지만,
내게는 무엇보다 장국영의 비련 도시였다.
영화 <아비정전>에서 나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그 말.
"세상엔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으로 시작하는
아비의 얼굴은 내 청춘의 잔상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었다.
세상에는 발 없는 새가 있어, 영원히 땅 위에 앉아 쉴 수 없다는 말은
당시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그토록 아름다운 남자의 뒷모습을, 맘보를 추던 그의 청춘을 그렇게 추억했다.
안녕 다정한 사람 p127-8 / 백영옥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