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덴차(Cadenza)에 대해서 ★
- 협주곡 속의 작은 독립국-
1. 카덴차에 들어가며
'카덴차'(cadenza)를 음악사전에서 찾다보면 실수로 '케이던스'(cadence)라는 항목에서 헤매게 되는 경우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로 실수가 아니다.
원래 카덴차와 케이던스는 둘 다 '떨어지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카데레'(cadere)를 어원으로 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즉 케이던스는 곡의 종지 부분에서 '곡이 어떤 모습으로 낙착되다.
끝맺다'라는 뜻으로 마침꼴의 화성 구조를 나타내는 단어로 쓰이게 된 것이며, 카덴차는 거기서 또 파생되어 '마침꼴의 화성 구조 안에 삽입되어 독주자가 자신의 기교를 과시하는 짧은 악구'를 가리키게 된 것이다.
따라서 협주곡에서의 카덴차의 자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마침꼴의 화성 구조를 알아둘 필요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 여기서는 협주곡을 중심으로 한 카덴차에 대하여 알아보자.
2. 협주곡에서의 카덴차의 자리
국민학교 때의 음악 시간으로 돌아가 보자. C장조의 으뜸 3화음이 '도 미 솔'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거기에서 두 번 자리바꿈한 것을 4 6화음이라 한다.
언뜻 보기에는 어려운 것 같지만 아무 것도 아니다. '솔 도 미', 즉 앞의 두 음이 차례대로 위로 올라가 쌓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한 번 피아노 앞에 앉아서 두 화음을 번갈아 가며 쳐보자.
똑같은 음을 쓰지만 음의 위치가 바뀐 것에 의해 두 화음이 주는 느낌은 조금 달라졌다.
4 6화음은 조금 더 격앙된 느낌, 고취된 느낌을 줄 것이다. 따라서 4 6화음을 쓰는 부분은 '자, 이제 독주자의 화려한 기교가 등장합니다.'라고 카덴차의 시작을 소개하는 관현악의 팡파르로서 쓰이게 되었다. 화려한 카덴차의 끝에 독주자는 긴 트릴 부분을 붙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면 오케스트라는 그 트릴을 딸림 7화음으로 감싸안으며 받아들인다.
그리고 으뜸화음의 종지부가 악장의 끝을 알린다.
3. 전체에 녹아드는 카덴차의 승리
이번에는 영화 '파리넬리'의 한 장면을 떠올려 보자. "파리넬리가 어떤 아리아의 마지막 부분에서 고음의 바이브레이션을 길게 끈다.
그 아리아를 듣던 여성 청중들이 잇달아 혼절한다." 이 장면은 초기의 카덴차를 너무나 잘 보여주는 컷이 아닐 수 없다. 바로크 시대에 주로 오페라에서 정말 아주 짧고 단순한 모습으로 쓰이던 카덴차는 기악으로 그 영역을 넓히며 점점 길고 화려하게 변하게 된다.
모차르트의 시대에 이르면 천재 작곡가이며 동시에 솔리스트로도 유명했던 음악가들에 의해 카덴차는 협주곡 속에 완전히 정착하게 되었다.
특히 모차르트는 카덴차를 정말 자유롭게 구사했다고 한다.
미리 (머리 속에) 작곡해 놓은 카덴차와 연주가 있는 날의 분위기에 맞는 악상을 적절히 섞어 완전히 즉흥으로 연주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가령 파리에서 어떤 피아노 협주곡을 초연한다고 할 때 모차르트는 그때 파리에서 가장 유행하는 멜로디로 화려한 임프로비제이션을 선보이는 카덴차를 넣은 것이다.
베토벤은 그러한 카덴차에 상당한 불만을 가졌다.
유난히도 음악의 완결된 구조와 통일성을 중시하던 베토벤은 카덴차로 인해 곡 전체의 통일성이 망가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카덴차를 악장의 끝에 삽입된 독주로 된 전개부로서 다루었다.
19세기에 이르면 화려한 기교파연주가들이 작곡가의 명성을 능가하는 경우도 많이 생긴다.
그에 따라 협주곡에서의 카덴차는 더욱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되었지만 점점 더 공허한 기교의 곡예로 위험스런 모습을 띠게 된다.
그리고 작곡가들도 앞다투어 자신의 곡이 아닌 협주곡의 카덴차를 작곡하기에 이른다. 브리튼이 작곡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22번의 카덴차가 후자의 예라면, 기돈 크레머(그는 비록 20세기의 비루투오조이지만)가 작곡한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의 카덴차는 전자의 예이다.
하지만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그 악장의 주제들을 바탕으로 작곡되어 곡의 구조와 통일성에 밀착한 카덴차가 가장 적절한 것으로 살아남게 되었다.
기교의 화려한 과시보다는 베토벤이 의도한 '악장 종결 부분에 담긴 새로운 발전부'의 개념이 승리하게 된 것이다.
4. 요아힘과 크라이슬러의 대결
베토벤과 브람스의 위대한 D장조 바이올린 협주곡의 첫 악장에 두 작곡가는 카덴차 부분을 비워놓았다. 19세기 후반의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과 20세기 초반의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 크라이슬러는 두 곡에 모두 카덴차를 남기고 있는데, 네 개의 카덴차 그 어느 것이나 원곡의 교향적인 악상을 해치지 않으면서 구조 속으로 용해되는 뛰어난 것이다.
현재는 베토벤에서는 크라이슬러의 것이, 브람스에서는 요아힘의 것이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다.
1) 베토벤의 협주곡
- 요아힘
제1주제의 변형으로 시작되는 행진곡으로 시작되어 트릴 위주의 매우 자유로운 환상곡이 전개된다. 1주제의 멜로디 위주의 더블 스토핑의 부분을 거쳐 토카타풍의 바른 패시지가 고음에서의 화려한 기교를 선보인다.
- 크라이슬러
제1주제가 거의 그대로 제시된 후 환상곡 풍의 전개가 이루어진다.
두 개의 선율이 확실히 부각되어 독립적으로 대위를 이루게 연주하는 고난도의 더블 스토핑이 인상적이다. 주제의 멜로디를 마치 두 대의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듯하다.
2) 브람스의 협주곡
- 요아힘
브람스와 거의 공동작업으로 협주곡을 완성시킨 요아힘이기에 그의 카덴차는 절대적이다.
더블 스토핑보다는 집시풍의 주제에 집중하여 집시풍의 환상곡을 전개해 나간다.
- 크라이슬러
제1주제와 제2주제가 적절히 발전을 보인다. 트릴의 성부와 멜로디의 성부를 함께 쓰는 더블 스토핑이 돋보인다.
중간 부분에 바흐의 샤콘느의 중간 부분 같은 밝은 조성의 상승과 비상의 부분이 놓인다. 상당히 잘된 카덴차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