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예술]]> <![CDATA[비키클럽 > 엔터테인먼트예술]]> 엔터테인먼트예술]]> 엔터테인먼트예술 http://vikiclub.com 제공, All rights reserved.]]> Sat, 27 Apr 2024 17:07:13 Sat, 27 Apr 2024 17:07:13 <![CDATA[명탐정 코난과 김전일에 대한 짧은 단상 ]]>


김전일과 코난은 둘다 유명한 추리만화입니다.

하지만 초반에 열풍을 주도했던 김전일이 의외로 너무 쉽게 무너진 반면에 코난은 현재 십년째 장수를 하고 있습니다. 

 

이 두 만화의 차이점은 이미 수차례 좋은 글들이 올라왔고, 두 만화의 성공, 실패요인도 이미 다 분석이 되어졌습니다. 

 

런데 최근 명탐정 코난을 다시 보니 김전일과의 차이점이 하나 보이더군요.

김전일과 코난(쿠도 신이치..코난으로 표기하겠습니다)이 아니라 김전일과 모리 코고로의 차이점이요. 

 

모리 코고로는 잠자는 모리 코고로로 코난의 세계에서는 넘버원의 탐정으로 대접을 받습니다. 코난을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코난의 여자친구인 모리 란의 아버지로 현재 코난은  모리탐정사무소에 살고 있죠. 

 

김전일의 실수는 주인공 설정입니다. 주인공을 일반인으로 설정했죠. 물론 그 능력은 결코 일반인은 아닙니다. 출신도 할아버지가 일본 제일의 명탐정이니 출신도 일반은 아니겠죠. 

 

하지만 김전일은 그냥 고등학생에 불과합니다. 김전일이 사건을 해결하려면 그 방법은 단 하나 가장 먼저 김전일 주변에서 사건이 발생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는 39권 동안 김전일이라는 이름만 알아도 죽을 확률이 몇십 퍼센트다라는 법칙까지 나왔습니다. 

 

주인공 주변 사람들이 전부 죽어나가니 전체적으로 볼때 이야기가 너무 너무 이상해질수밖에 없죠. 

 

반면에 명탐정 코난 쪽에서는추리의 완성도에서는 떨어져도 설정에서 이겨, 결국 최후의 승자가 되었습니다. 잠자는 모리 코고로, 굉장히 볼것없어 보이는 이 사람 사실은 엘리트입니다. 이 사람은 경시청 수사1과 형사출신입니다. 일본 경찰만화, 애니, 드라마, 소설 등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경시청 수사1과의 형사가 되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명탐정 코난에서 간단한 예를 들죠.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 지역이 도쿄도일 경우에는 모든 형사, 순사(순경)들이 모리 코고로에게 협조적입니다. 그리고 오사카에는 핫토리헤이지라는 서일본지역의 실질적인 경찰짱의 아들이 코난에게 협조를 합니다. 지방에서는 도쿄도경찰(경시청)에게 경쟁의식을 느끼는 지방형사들이 모리 코고로에게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형사들이 비협조적이어도 그 밑의 순경들은 꼬박꼬박 모리코고로에게 경례를 합니다. 당연하죠. 모리코고로는 경찰OB로 순경들이 볼때는 하늘의 별과 같은 사람이죠.

 

동일본에서는 모리코고로,  서일본에서는 핫토리헤이지라는 강력한 인맥을 갖고 있는 코난입니다. 코난은 자신의 주변사람들이 죽어나가지 않아도 가만히 있으면 사건들이 굴러 들어옵니다. 소년탐정단이라는 것까지 동원해서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죠.

 

하지만 김전일에게는 인맥이 없죠. 경시청내에 아는 형사가 두명 캐리어가 한 명, 논캐리어가 한 명, 하지만 어른형사들이 사건이 안 풀린다고 고등학생에게 의뢰하러 올까요? 이 두명은 사건이 벌어졌을 때 일개 고등학생이 쉽게 사건현장에 접근할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 불과합니다. 

 

김전일은 명탐정이지만 무명입니다. 경시청에서 수십개의 사건을 해결한 김전일에게 준것은 표창장 하나, 것도 비공개로. 솔직히 이것은 당연합니다. 경시청이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고 일개 고등학생이 사건을 수십개 해결했다면 어떻게 시민들이 경찰을 믿고 생활할수 있을까요??? 

 

아버지가 세계적인 추리소설가이므로 사건을 해결하면 할수록 언론에서 알아서 띄워주는 쿠도 신이치. 쿠도 신이치가 사건을 해결하면 언론에서는 쿠도 신이치의 대단함을 부각하지 결코 경찰의 무능함을 부각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경찰이 무능해서 쿠도 신이치가 사건을 해결했다는 식으로 기사를 쓰면 쿠도 신이치는 스타가 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경찰도 해결하기 어려운 사건을 일개 고등학생이자 아버지가 세계적인 추리소설가인 쿠도 신이치가 해결했다면 문제가 다르죠. 

 

김전일과 달리 쿠도 신이치가 사건을 해결해도 경찰에게는 불명예가 안되죠. 모리 코고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모리 코고로는 경시청 출신입니다. 경시청 출신 탐정 모리 코고로가 사건을 해결하면 그것은 결코 경시청에게 불명예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경시청의 형사들은 사건이 미궁에 빠지면 스스로 알아서 경시청OB인 모리 코고로에게 협력을 부탁하기도 합니다. 모리 코고로는 TV에도 자주 출연하고, 실제로 그의 추리쇼가 생방송된 적도 있습니다. 

 

수많은 사건이 스스로 찾아오는 유명한 무능력탐정 모리 코고로(실제로는 코난)과 사건이 찾아올리 없는 무명의 명탐정 김전일.

 

일반 고등학생이 사건을 풀어헤친다는 시도는 좋았지만 일반인 주변에 살인사건이 수십차례 벌어질리가 없죠. 명탐정 코난의 모리 코고로의 별명은 두개입니다. 하나는 잠자는 모리 코고로 다른 하나는 사신 모리 코고로(이것은 경시청 메구레경부가 붙여주었죠) 

 

코난도 연재가 십년이다 보니 모리 코고로에게 의뢰하는 사건들 중에 살인사건이 너무 많죠. 그래서 일부러 경시청 메구레 경부의 입을 통해서 '왜 자네(모리코고로)가 가는 곳마다 살인사건이냐'라는 멘트를 정말 정말 자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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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 26 Jan 2014 22:54:12
<![CDATA[소나타 형식(Sonata form)이란?]]> ★ 소나타 형식(Sonata)form)에 대하여 ★

 

1. 소나타 형식을 모르면 서양음악을 들을 수 없다?!

 

우리는 클래식음악을 감상하거나 또는 음반을 살 때 혹은 클래식방송을 듣다 보면 제일 많이 듣는 음악 악식구조로 또는 용어로 소나타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서양음악은 소나타 형식이 대부분의 악곡의 형식을 차지할 만큼 상당히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우리가 고전음악을 감상할 때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와 같은 대 작곡가를 가장 먼저 접하게 되듯, 이 소나타 형식은 악곡 형식 중에 제일 먼저 접하게 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소나타 형식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 듯 싶다.

 

"소나타 형식을 모르면 서양음악을 들을 수 없다"라는 말은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물론 이 말은 전적으로 사실은 아니다.

서양음악이 모두 소나타 형식으로만 되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고전에서 낭만기를 거쳐 20세기 초반에 이르는 시기의 서양음악, 그 중에서 순음악 작품들(교향곡, 협주곡, 소나타, 삼중주, 세레나데,...)에 있어서는 불행히도 이 말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들을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물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거나 들으면 위험하다라는 뜻은 아니다.

그저 '그 악곡에 대한 이해의 폭이 훨씬 좁아진다' 또는 '열심히 들어도 반쪽만 들었을 뿐이다'라는 뜻이다. 그만큼 소나타 형식은 서양음악에 논리를 제공하는 작곡가와 청중간의 약속이었다.

즉 작곡가는 미리 약속된 형식 안에서 주어진 요소 - 멜로디, 화성, 조성의 규칙 - 로 자기의 작곡 기량을 발휘하고, 청중은 그 형식의 범위 안에서 들으며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었다.

청중들은 이 장치로 인해 날마다 바뀌는 새로운 형식에 대한 적응이라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2. 소나타 형식의 아버지는 푸가

 

  소나타 형식이 그 원형을 빌려온 것은 바로크 시대에 완성된 푸가였다.

물론 푸가는 대위법에 바탕을 둔 복잡한 폴리포니 음악이다.

흔히 주제라고 하는 음악의 요소가 대조와 화합의 모습으로 융합되어 있는 거대한 구조물이 바로 푸가로서, 여기서는 주된 주제들이 각기 다른 성부에서 동시에 울려나오기 때문에 치밀한 구조로 쌓아올려지게 되고, 이는 청중들에게 듣는 부담을 주기에 충분했다.

호모포니 시대로 넘어오면서 작곡가들은 좀더 청중들이 이해하기 쉬운 악곡의 형식을 시도하게 되었다. 이에 푸가를 평면적으로 해체해 재구성한 것이 소나타 형식이라는 특허품이다.

즉 소나타에서는 주제들이 동시에 얽히며 울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차를 두고 차례로 제시된다.

그에 따라 희박해 지는 음악의 긴밀감의 해결을 위해 주제의 위상차와 성격차라는 간차를 마련하게 되었다.

즉 제1주제와 제2주제의 조성차 - 토닉과 도미넌트, 이는 역시 푸가에서 따온 것이다 - 와 뚜렷이 구분되는 두 주제의 성격의 대조가 그것이다.

그리고 재현부에서 제1주제와 제2주제가 같은 조성으로 울리며 조성적 위상차가 사라진다.

조금은 유치하지만 그에 따라 갈등의 해결과 화합이라는 메시지의 전달이 가능해졌다.

 

3. 조성적 해결의 설득력

 

  당시의 청중들에게는 물론 토닉-도미넌트라는 조성차가 '토닉-토닉'으로 해결된다는 구조가 상당히 설득력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음악대중들은 바그너와 다조주의, 무조주의 등의 조성적 태동기를 거치며 혹사당한 귀로 복잡한 조성적 구조의 음악을 듣고 있기 때문에 그 당시 청중들만큼 소나타 형식 내의 '조성적 해결'이라는 장치에 민감하고 순수하게 반응하지 못하게 되었다.

즉 오늘날의 청중들은 재현부에서 두 주제가 같은 조로 돌아온다 해도 갈등의 해소와 화합의 쾌감을 느끼기 힘들 것이다.

 

4. 작곡가들의 실험의 장으로서의 소나타 형식

 

  조성의 해결보다 훨씬 드라마틱한 구성은 제공한 것은 제1주제와 제2주제의 뚜렷한 성격차이였다. 이 성격의 차이는 두 가지의 대립되는 추상적인 개념들을 담아내기에 아주 적합했다.

폭력과 평화, 죽음과 빛, 슬픔과 환희 등의 예를 들어보자. 이 단어들의 추상성은 음악의 추상성에 적합하게 적응했고, 이 둘을 주제별로 대립적으로 등장시켜(제시부), 둘의 극한 투쟁을 거쳐(발전부), 해결의 국면으로 들어서는(재현부) 모습은 소나타 형식에 음악적으로 충분히 밀착되어 나타나게 되었다. (멘델스존의 교향곡 5번 '종교개혁'에서 신교와 구교의 갈등과 그 해소가 나타난 것도 그 한 예이다).

한편 이러한 순음악으로서의 넓은 표현의 폭과 함께 소나타 형식 을 풍성하게 한 것은 작곡가 자신들의 노력이었다. 그에 따라 소나타 형식에서 파생된 수많은 형식들이 실험대에 올랐고 변형과 그에 따른 무수한 시도들이 행해진다.

발전부는 더욱 확장되었고 치열한 모습을 담게 된다. 특히 소나타 형식을 탄생시킨 푸가는 발전부의 치열한 투쟁 국면을 그려내는 데 가장 적합한 구조로 단골로 등장하며, 그 안에서 자리잡게 되었다.

 

5. 완벽한 게임의 법칙

 

  소나타 형식은 소나타 속의 몇 악장에만 적용되지만 악곡 전체에 통일성을 가져오는 기능을 주제적 연관성으로 제공한다.

남성성과 여성성으로 대별되는 제1주제와 제2주제는 모든 악곡을 꿰뚫으며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서양음악을 들으려면 소나타 형식을 이해해야만 한다'는 말은 결코 과대포장된 빈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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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 26 Jan 2014 22:21:12
<![CDATA[오라토리오(Oratorio)란?]]> ★ 오라토리오(Oratorio) ★

 

  보통 종교적인 소재에 작곡된 규모가 큰 서사적인 악곡이다.

 

  오라토리오는 반종교개혁의 종교적인 음악이 있는 연극(play with music)의 계통을 이은 것이다. 그 이름은 기도하는 장소라는 뜻의 이탈리아어에서 딴 것이다.

 

  최초의 오라토리오들은 종교적 오페라였고, 오페라로서 상연되었다.

그러나 17세기 중엽에 이르러 오라토리오는 무대의 치장들을 벗어버리고, 대개 성서의 이야기를 주제로 하고 종교적 감정으로 가득찬 독창, 합창과 관현악을 위한 대규모 음악 작품으로 그 자체의 특징을 발전시켰다.

 

  그것은 무대장치나 의상, 또는 연기가 없이 교회나 공화당에서 연주되었다.

그 진행은 이야기하는 사람(narrator)의 도움으로 그리고 일련의 레치타티보와 아리아, 이중창, 삼중창 등의 중창 순서와 합창에 의해 전개되었으며, 합창의 역할이 강조되었다.  

따라서 교회 칸타타와 수난곡 등의 한계는 애매한 점이 없지 않다.

 

  오라토리오는 중세 후기에 가톨릭 교회 내에서 하는 의식인 극과 신비극 등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크 시대에 이르러 1600년 로마에서 상연된 카발리에리의 [영혼과 육체의 연기]라는 극형식의 오라토리오였다.

여기서는 몸짓을 하면서 대화와 독창을 하는 일종의 종교 교훈극이었다.

이것이 카리시미 때에는 동작도 분장도 없이 오늘날과 같은 합창 형식이 되었다.

 

 18세기의 헨델[에스더, 메시아, 유다스 마카베우스]과 하이든[천지창조, 사계], 19세기의 멘델스존[바울, 엘리야] 등의 오라토리오는 유명하다.

 

  한편 종교적인 것이 아닌 현대의 세속적 오라토리오로서 러시아의 쇼스타코비치의 [산림의 노래], 스트라빈스키의 [오이디푸스 왕]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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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 26 Jan 2014 22:20:44
<![CDATA[모테트(Motet)란?]]> ★ 모테트(Motet) ★

 

이것은 12세기에서 근대에 이르는 교회 합창 음악인데, 주로 가톨릭 교회의 예식을 위해 라틴말로 된 무반주 합창곡을 말한다.

 

여기에는 세속적인 것, 독창용으로 된 것, 기악 반주로 된 것 등이 있는데, 일정한 정의를 내리기는 힘들다.

 

이것은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있어서 최초의 복음악으로서는 중요한 형식이었다.

팔레스트리나와 랏소 등의 시대를 지나 17세기에 이르러 오르간 반주의 교회 협주곡 형식이 생겼다.

 

한편 독일에서는 이같은 아탈리아의 협주곡적인 모테트의 영향을 받아 쉬쯔는 기악 반주로 모테트를 작곡하였다. 바흐는 6곡의 무반주 모테트를 썼으며, 프랑스의 륄리와 쿠프랭, 라모 등도 우수한 모테트를 작곡했다.

 

그 뒤에 모짜르트, 멘델스존, 브람스, 프랑크, 댕디와 같은 작곡가들도 모테트를 작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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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 26 Jan 2014 22:20:17
<![CDATA[ 푸가(Fuga)란?]]> ★ 푸가(Fugue/Fuga)에 대해서 ★

 

 

1. 푸가에 들어가며

 

바흐의 음악을 듣거나 이야기할 때 자주 거론되는 음악용어인 푸가라는 말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이 용어는 <소나타 sonata>나 <카논 canon>처럼 하나의 음악형식을 일컫는 말로서 영어로는 fugue, 독일어로는 fuga이다. 푸가는 음악양식 중 모방에 관한 것인데 돌림노래나 카논처럼 한 성부를 뒤따라오면서 다른 성부가 모방을 하면서 곡을 전개시켜나가는 것을 말한다.

 

2. 모방에 대하여

 

대위법적 기법의 가장 기본이 되는 모방이란 표현상의 어떤 의도에 바탕을 두고 어떤 성부의 선율이 같은 높이로, 또는 다른 높이로 뒤에 이어지는 성부로 되풀이되는 경우를 가리키고 있다.

대위법적인 기법에 바탕을 둔 악곡에서의 모방은 성부가 서로 엄격하게 선율을 되풀이하는 것과 선율 또는 리듬에 다소 변화가 있더라도, 그 기본 형태를 되풀이하는, 다소 자유로운 것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엄격하게 모방하는 것으로서는 <병행 카논>을 들 수 있으나 카논에 있어 서로 모방기법을 어떻게 응용하는가에 따라 여러 종류 (반진행, 확대, 축소 기타)의 카논으로 나누어진다.

또 이 모방기법이 주제에 대한 응답의 형식을 취하게 되며, 드디어 푸가로 전하여 뚜렷한 주제와 응답의 관계가 이루어진다.

즉 주제에 대한 응답은 완전5도 놓게 (또는 완전4도 낮게) 모방함으로써 조옮김된 모양으로 되며, 딸림조의 성질을 나타낸다. 따라서 주제와 응답은 원칙으로 으뜸조와 딸림조의 관계를 확립하게 되는 것이다.

 

3. 모방기법의 발달

 

이와 같은 모방 기법은 악곡에 있어서는 어떤 성부의 선율이 뒤에 이어지는 다른 성부에 되풀이되는지, 또는 유사한 선율선, 리듬이 다른 성부에 사용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기법은 이미 12세기 말 노트르담 악파의 페로탱(Perotin, 1180-1236)의 작품에서 그 싹을 볼 수 있다.

13세기 초에 노트르담 악파에 의하여 정형화되었으리라 생각되는 모테토(mottetto)는 그레고리오 성가로부터 취한 정선율이 초기에는 테너(Tenor) 성부에 사용되고 있었다.

이 테너에 서로 다른 가사를 가진 2성부의 2중 모테토, 역시 다른 가사를 가지는 3성부의 3중 모테토 등이 있으며, 이들 성부의 상호 관계에 카논과 같은 대위법적 기법의 징후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여러 성부을 가지는 모테토는 13세기의 작곡 양식으로서 정형화되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14세기에 걸쳐서는 4성의 표현도 볼 수 있게 되었으며, 또한 동시에 화성적으로도 충실해졌고 기법도 더욱 진보된 표현을 취하게 되었다.

이 시대의 탈레아(Talea), 또는 콜로르(Color)라고 일컫는 기법은 15세기에 더욱 정교해진 기법을 예상케 하고 있다.

이리하여 13세기부터 14세기에 걸쳐서 모테토는 모방 기법을 더욱 발전시키는 동시에 14세기에는 대표적인 악곡 형식으로 되었다.

15세기에는 다가사성과 테너의 정선율의 지배가 약화되고, 각 성부가 모방에 참가하는 모방양식 이 이루어진다.

이와 같은 모테토 양식을 기악에 응용하게 되었으며, 16세기·17세기의 중요한 기악 형식인 리체르카레(Ricercare)나 칸초네(Canzone)가 등장하게 하였다.

그것들은 푸가나 소나타의 선구적인 형태로서 그것들을 발전시키며 확립해 나가는 기반으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17세기 이후가 되면서 점점 조성이 확립되어 갔으며 또한 이와 병행하여 기악의 눈부신 발달은 기악적, 조성적 모방의 기법을 확립하여 바흐의 푸가에 의해 그 절정에 도달하는 것이다.

 

4. 푸가의 형식

 

이와 같이 발전해 온 푸가는 어떤 형식을 가지는 악곡일까?

악곡으로서의 구성은 모방양식의 발전에 의해서 생겨났기 때문에 첫 번째 대위법양식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대위법 양식이 되기 위해서는 2성부이상이 되어야 할 것과 주제를 담당하기 위해서는 각 성부가 독립성을 가질 것, 그리고 모든 성부가 같은 중요성을 가질 것 등이 기본으로 되고 있다.  

두 번째 주제와 그 모방에 의하여 구성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와 같은 점들은 푸가의 가장 중요한 점들이라 말할 수 있다.

제1의 전개부는 주제의 제시와 그 모방, 즉 응답에 의한 부분으로서, 여기에 제시되는 주제는 전곡에 걸쳐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이다.

즉, 이 주제가 전 곡을 통하여 일관해서 반복, 모방됨으로써 곡이 구성되기 때문에 주제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으며 또 대위법의 의한 기법의 처리에도 적당한 것이 아니면 안 된다.

먼저 주제가 제시되면 다음에 이어지는 성부에서는 응답을, 그리고 제3의 성부에서는 다시 주제 가 제시된다.

4성 푸가의 경우는 다시 응답이 제4의 성부에 도입된다.

이와 같이 모든 성부에 주제와 그 모방, 즉 응답이 제시되면 짧은 간주를 거쳐서 제2전개부로 들어간다. 제 2전개부는 제1전개부에서 주제를 제시한 성부는 응답을, 그리고 응답을 담당한 성부는 주제를 담당한다.

이리하여 성부의 담당을 교체하는 동시에 조성에 있어서는 관계조로 성립하게 된다.

즉 제 1전개부는 으뜸조를 중심으로 하는데 반해서, 이 제2전개부는 장조에 있어서는 버금딸림조, 또는 병행단조, 단조에 있어서는 병행장조 등이 많이 사용된다.

다만 이 조 관계도 푸가 그 자체에 의해서 상당히 다르게 되는 것은 많은 푸가를 분석함으로써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제3전개부는 원칙적으로 다시 으뜸조위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또 고도의 기법을 응용한 스트레토(Stretto)도 대개는 이 제3전개부에 사용된다.

각 전개부는 간주에 의해서 서로 연결된다.

간주부는 전개부 상호간의 조성 관계를 자연스럽게 유도하기 위한 경과부로 되며, 또한 조바꿈 악절이 된다. 그리고 주제와 응답에 의한 전개부의 긴장감을 간주부에 의하여 완화시킴으로써 다음의 전개부의 주제와 응답 또는 그들의 모방에 의한 전개가 더욱 인상깊은 것으로 된다.

푸가로서의 조성 관계는 원칙적으로 관계조의 범위 내의 조가 사용되는데, 가장 많은 조를 사용하고 있는 예의 하나로서 a단조 푸가(BWV 897)를 들 수 있다.

이 a단조의 푸가에 있어서는 제1전개부에서 주제(a단조)- 응답(e단조)- 주제(a단조) 등으로 된 다음, 제2전개부 이후는 항상 5도 관계의 의한 두 개의 조로 된다.

즉, 병행조에 의한 C장조와 G장조, e단조와 그 딸림조인 b단조, 긴 간주가 있은 다음 g단조와 d단조, F장조와 C장조 등의 관계를 볼 수가 있다.

 

  이와 같이 많은 조로 접촉되고 있은 것은 보기 드문 예의 하나이다.

푸가와 같은 구성을 가지면서 전개부가 작게 축소된 형인 경우, 이를 푸게타(Fughetta)라고 부르며, 또 푸가에서의 주제의 제시와 응답 같은 기법을 사용한 부분을 푸가토(Fugato)라고 부르고 있다. 바흐의 <음악의 헌정>(Musikalisches Opfer)의 제4곡에 Fuga Canonica를 볼 수 있다.

Fuga Canonica는 Fuga Periodica에 대한 것으로, 본래 이 두 개에는 성부의 모방기법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이런 구별이 있었던 것이다.

현재의 카논은 Fuga Canonica를 가리키며, 푸가는 Fuga Periodica를 가리키고 있다.

 

5. 푸가의 구성 및 진행

 

  푸가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그러나 이 방식은 푸가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소나타 형식도 주제-발전-재현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고, 론도라는 음악형식도 주제-변주-주제라는 흔히 A-B-A라는 형식을 많이 이용하고 심지어는 재즈도 주제-변주-주제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상세한 부분으로 들어가면 각각 서로 완전히 다르다.

이것은 서양 음악만의 안정적이기 위한 독특한 구조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 하나 하나 푸가의 구성과 어떠한 구조진행을 하는지 살펴보자.

 

  >> 제1부분 <<

 

  푸가의 처음 시작이므로 당연히 '주제'가 있을 것이고 그 다음 에 '응답', '대주제', '삽입구'로 이루어진다.

 

  '주제(Subject)'의 처음 시작은 으뜸화음으로 시작되며, 다른 성부가 주제를 이어 받을 때에는 주로 딸림화음으로 받는다.

이 때 주제의 개수가 한 개이면 단순 푸가라고 하며 주제의 개수에 따라 2중 푸가, 3중 푸가 등으로 불린다.

 

  '응답(Answer)'이란 두 번째 성부에서 주제가 모방되어 지는 것을 말한다.

이 때 완전 5도 위에서 응답이 나오면 '진정 응답(Real Answer)'이라 하고 다른 음정에서 나오면 '조성 응답(Tonal Answer)'라고 한다.

응답은 주제가 끝나자마자 나오거나 또는 주제의 마지막 음과 동시에 시작할 수도 있으며 특별히 주제와 응답이 약간 겹치면 '근접 모방(Stretto)'이라고 한다.

 

  '대(對)주제(Counter Subject)'. 곧 응답에 이어지는 대선율로서 독자적인 선율과 리듬을 가지며 푸가가 발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실제 푸가 음악의 묘미는 대주제의 발전을 어떻게 이어나가는지에 있다.

 

  '삽입구(Episode)'는 각각의 전개부를 부드럽게 연결하는 윤활유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주제나 대주제로부터 얻은 힌트로 만들어지며 다른 부분처럼 엄격한 작곡 기법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 제2부분 <<

 

  제1부분에서 제시된 주제와 대주제는 변화무쌍하게 활개를 치기 시작한다.

제2부분은 주제가 새로운 조성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시작하며 다양한 변형형태를 취하는데 다음이 그 예이다.

 

    캐논(Canon)

    모방(Imitation)

    확대(Augumemtation)

    축소(Diminution)

    전위(Inversion)

    반대진행(Contrary motion)

    역진행(Retrograde)

    반역진행(Retrograde contrary motion)

 

  >> 제3부분 <<

 

  제1부분의 조성으로 주제가 나온다. 즉, 원형을 상기시켜 준다.

그러나 제1부분인 제시부와는 달리 음악의 마지막 부분이므로 정격 종지를 강조하고 또한 코다(Coda)를 가질 수도 있다.

주제의 재현은 제1부분과는 반대로 응답-주제의 순서이다.

제3부분에서는 '근접 모방(Stretto)'과 '지속음(Pedal point)'들의 기법을 주로 사용한다.

 

  '근접 모방(Stretto)'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응답이 주제의 완결 전에 약간 겹쳐서 등장하는 것을 말한다.

 

  '지속음(Pedal point)'이란 베이스가 같은 음을 길게 지속시키는 것을 말한다.

주로 1도와 5도 음을 말한다.

 

6. 우주 질서의 음악적 구현

 

  "대위법이니 푸가니 하는 것들 몰라도 나는 음악만 좋아하는 걸"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이며 틀린 이야기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 제사인지 몰라도 나는 절만 잘하는 걸"이라는 말과 똑같은 이야기라면 어떨까. 그만큼 대위법이란 서양음악을 오늘날의 모습으로 존재하게 만든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지금은 '소'인 것이 대위법이라는 유전자가 없었다면 '말'이 될 수도 있었다는 비유가 과장된 것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위법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음악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른 모습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푸가는 고도의 대위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푸가를 알려면 대위법을 먼저 어렴풋이나마 이해해야 한다.

 

  비제의 '아를르의 여인' 제2모음곡의 마지막 곡, '파랑돌'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첫 멜로디와 두 번째 멜로디가 순서대로 제시된 이후 두 멜로디가 같이 연주된다.

두 멜로디가 서로 밀고 당기는 듯하면서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그때 재미를 느낀 사람이라면 대위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한번 눈을 뜨면 한없이 재미있게 들리는 것이 대위법이다.

 

  푸가는 모방 대위를 기초로 한다. 모방 대위는 쉽게 말해 돌림노래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푸가에 접근해 보자.

한 사람이 어떤 멜로디를 노래한다. 다른 사람이 그 멜로디를 뒤따라 부른다.

그런데 첫 번째 사람은 노래를 그치지 않고 다음 소절을 계속 부르고 있다.

처음 부르기 시작한 앞부분의 멜로디와 다음 소절의 멜로디가 같지 않다면, 두 번째 사람이 노래를 시작했을 때 두개의 멜로디가 섞이게 된다. 여기까지는 돌림노래와 같다.

그런데 뒤따라 부른 사람이 노래의 음정이 너무 높아서 좀 낮추어 부른다.

공교롭게 원래 노래의 딸림조로 낮추어 부르면 간단한 푸가의 제시부가 되는 것이다.

앞부분의 멜로디는 푸가의 '주제'가 되고, 다음 소절의 멜로디는 '대주제'가 되면 뒤따라 부른 사람의 멜로디는 '응답'이 된다.

 

  '그렇게 간단하다면 나도 한번...' 동생을 앉혀놓고 따라해 보면 돌림노래부터 실패할 것이다.

설사 성공한다 치더라도 딸림조로 부르게 하면 무시무시한 느낌이 드는 불협화음이 생길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한 바흐의 푸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름다움이 넘쳐흐른다.

주제와 대주제의 선정부터가 절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횡적으로 전개되어 나가는 각 성부의 멜로디들이 수직적인 화성구조로도 유기적으로 통일되어 진행되기 때문이다.

바흐는 오히려 푸가의 구조 안에서 한없이 자유로웠다.

그는 '우주를 담는 그릇'으로 푸가의 틀을 이용했던 것이다.

 

  완전한 푸가가 아닌 제시부만을 놓고 보더라도(제시부로만 된 푸가를 푸가토라 한다) 푸가는 상당한 긴장감을 자아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느린 푸가는 묘한 센티멘털리티를 표현하는 데 상당히 효과적이다.

베토벤의 '영웅'교향곡 두 번째 악장에 나오는 푸가는 처절한 슬픔을 표현하는 효과를 가진다.

그리고 역시 베토벤의 '대푸가'는 순수한 것에 대해 타오르는 열망을 긴박감 속에서 그려내고 있다. 베토벤 이후로 소나타 형식의 발전부에 등장하는 푸가는 순음악을 동경하는 작곡가들의 자기 고백으로서 오랫동안 그 역할을 이어간다.

바흐의 신성한 푸가는 베토벤에 의해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는 푸가로서 땅위에 내려선 것이다.

 

  닐센의 교향곡5번에 등장하는 푸가는 전쟁의 폭력성과 평화를 갈구하는 의지 사이의 투쟁을 그려낸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푸가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완전한 표현의 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

말러의 교향곡9번의 3악장에서 푸가는 죽음 앞에서 몸부림치는 인간을 그려낸다.

참으로 말러답게 푸가를 사용한 예이다.

빌라 로보스의 '브라질 풍의 바흐' 8번의 마지막 악장 푸가는 바흐를 향한 그리움을 토해 내는 듯이 들린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4번 1악장의 종반부에 등장하는 푸가는 표제적인 요소는 없지만 소름끼치도록 처절한다.

역시 그의 교향곡11번 2악장에서는 혁명군을 학살하기 위해 진격하는 정부군의 발걸음이 푸가로 표현된다. 이런 극적인 효과까지 거침없이 담아내는 푸가는 역시 신비롭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 형식은 너무도 답답하게 꽉 짜여진 것 같으면서도 담지 못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푸가의 집대성자인 바흐는 이미 그것을 깨닫고 가장 넓고 가장 큰 것을 담으려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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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 26 Jan 2014 22:19:55
<![CDATA[ 샤콘느(Chaconne)란?]]>

★ 샤콘느(Chaconne)에 대해 ★

 

    샤콘느(chaconne) 혹은 치아코나(ciaconna)라는 형식의 곡은 17, 18세기에 널리 쓰인 기악곡의 한 형식으로서, 이 형식은 프랑스나 스페인에서 유래한 것이 라고 한다. 특히 17세기는 음악사에서 <바로크 baroque>시대라고 하는 때로서, 몇 가지 시대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로는 오페라가 발달한다. 그 이전까지는 이탈리아의 마드리갈 류 '노래'들이 융성했으나 그 시기부터는 프랑스 절대 왕정에 기초하여 화려한 양식의 오페라들이 붐을 이루게 된다. 초기 바로크시대에는 단순한 선율에 화음반주를 붙이는 모노디의 발생과 그 영향으로

오페라가 출현했다. 둘째는 건반악기 주자가 주어진 저음 위의 숫자에 의해 화음을 보충하여 나가는 숫자 붙은 베이스(figured bass) 혹은 바소 콘티누오(basso continuo)의 기법이며, 셋째로는 중세 선법으로부터 장조와 단조의 조성체계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 밖의 눈여겨볼 특징으로는 연속적인 선율, 일정한 수준의 음향으로 움직이는 테라스식 강약 (terraced dynamics), 베이스 성부에서 연속에서 반복되는 짧은 악구(선율이나 음의 라인)인 바소 오스티나토(basso ostinato), 그리고 기교중시와 즉흥연주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바로크시대의 음악의 특징을 알고 있다면 샤콘느나 푸가의 형식이나 구조를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래서 바로크시대의 오페라의 붐으로 쟝 밥띠스트 륄리(Jean Baptist Lully)같은 음악가들의 음악을 위시하여 베르사이유 궁정에서는 화려한 음악극들이 펼쳐졌던 것으로 그리고 당시까지 성악에 의존하던 음악에서 비로소 반주의 기악 파트가 독립적으로 기악 음악이 발전하기 시작한다. 그 예가 곧 기악곡을 지칭하는 용어들의 탄생(즉, 푸가나 소나타라고 하는 용어)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악기 개량의 성과를 반영하는 기악 모음곡(suite)의 융성이다. - 바흐의 많은 독주·합주 모음곡, 헨델의 모음곡, 스카를라티의 하프시코드 곡들, 라모의 클라브생 모음곡들 등.

 

    샤콘느는 이러한 바로크 기악 모음곡의 일부를 차지하던 한 양식으로 샤콘느 이외에도 모음곡에는 프렐류드, 쿠랑트, 알레망드, 사라방드, 지그, 더블, 미뉴엣등과 같이 춤곡과 기악곡이 들어 있었다. 이 샤콘느 양식의 특징은, ⓛ 느린 3박자의 변주곡이고 ② 둘째 박에 강세가 있으며 ③ 저음 주제를 가진다는 점이다.

 

    이것들을 조금씩 더 덧붙이자면 샤콘느는 프랑스풍의 느린 3박자 춤곡이며 그것의 형식이 3박자의 변주곡형식을 띄고 그 두 번째 박자에 강세를 가진 곡이라는 것이 큰 뼈대이다. 그러한 전 곡의 뼈대를 이루는 것이 저 음 속에 숨어 있다. 다시 말해 하나의 음악적 에피소드를 구성하는 <4마디의 단위> 속에는 그 곡 전체를 이끌어가고 자주 반복되는 주제(테마)가 나타난다. 이러한 것은 특히 순차 하행하는 4도의 음정이나 상행 5도의 음정으로 구성되어 딸림조가 주제에 대답하는 형식이 보통인데, 이 저음선이 전곡을 통해 끊임없이 나타나고 때로는 그 화성으로 암시되기만 하기도 하면서 또는 주제의 선율이나 조가 템포가 변형되어 나가면서 진행되어 간다.

 

    이러한 것을 위에서 말한 바소 오스티나토(basso ostinato)라고 하는데, '바소(basso)'라는 것은 기초음(base)를 말하는 용어이고, '오스티나토(ostinato)'라는 것은 곡 전체에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짧은 악구 - 선율이나 음의 라인 - 를 말한다. 이것의 가장 대표적인 경우라면 요한 파헬벨의 <캐논과 지그 D장조>의 콘티누오 파트 악보처럼 하나의 멜로디가 제시되고 이 주제라인을 뒤이어서 계속 따라 나오는 캐논(돌림노래 형식- 모방의 일종)을 보면 바소 오스티나토를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형식의 곡으로는 파사칼리아(Passacaglia)라는 것과 앞에서 말한 푸가(fuga)라는 형식의 곡이 있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서로 구분이 되어지지만 그 큰 곡의 진행이나 줄기를 본다면 말이다. 다시 한번 정리하여 말하자면, 샤콘느란 둘째 박에 강세를 가진 3박자의 느린 춤곡(변주로 주제를 발전시켜 나감)으로서 저음의 오스티나토 위에서 진행되는 변주곡(variation)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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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 26 Jan 2014 22:19:24
<![CDATA[변주곡(Variation)이란?]]>

★ 변주곡(Variation)에 대해서 ★

- 끝없는 음악적 상상력의 바다 -

 

1. 변주곡에 들어가며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말 전하기 게임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모두가 한 줄로 늘어서고 첫 번째 사람이 문장 하나를 다음 사람에게 귓속말로 전해준다. 그런 식으로 끝까지 가면 마지막 사람은 전혀 다른 문장을 이야기하게 된다. 하지만 더 재미있는 것은 한 사람씩 자기가 전해준 문장을 이야기하게 시켜보는 것이다. 개개의 인물의 성격이나 생각대로 문장이 변해 가는 것을 보면 더욱 즐거울 것이다. 변주곡의 각 변주도 그 줄 속에 늘어선 사람들과 똑같다. 독특한 모습과 고유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첫 문장에 해당하는 '주제'라는 멜로디가 각 변주의 성격에 따라 어떻게 변해 가는가를 아는 것이야말로 변주곡을 듣는 무한한 재미라 할 수 있다. 인간에게는 본능적으로 모방을 통한 창조의 본능이 있다. 그래서 같은 리듬과 선율의 곡을 때로는 스스로의 느낌에 의해 연주해 보고 싶다는 즉 박자, 리듬, 선율을 모두 바꾸어 자기만의 표현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변주곡은 음악이 생긴 이래로 계속해서 있어왔고 발전해온 음악표현인 것이다. 실제로 이 변주의 형태는 고전음악이 아니라도 재즈나 락, 메탈, 가요, 팝 등에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푸가나 소나타 등도 크게 보아서는 변주곡이라고 할만큼 모든 음악에 들어가 있는 실로 막강한 것이지만 그럼 여기서는 클래식 음악을 중심으로 한 변주곡에 대하여 알아보자.

 

2. 변주의 기술과 상상력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보자. 엄격히 말해 이 곡은 변주곡은 아니지만 첫 곡인 '프롬나드'의 멜로디가 각 그림의 성격에 맞게 바뀌어 나타나고 있다. 즉 이 작품은 '프롬나드'의 멜로디를 주제라고 할 때 그 변형으로 모든 그림을 그리고 있는 유사 변주곡인 것이다. '껍질 속의 병아리의 춤'에서는 '프롬나드'가 축소되어 빨라지고, 엇박자를 가진 스타카토로 연주되며 팔짝팔짝 뛰는 병아리의 모습을 나타낸다. '키예프의 성문'에서는 '프롬나드'가 폭넓게 확대되어 느릿해지며 화성적으로 중첩되어 장엄함을 나타낸다. 다른 곡들에서는 당김음을 쓰기도 하고, 음표와 음표 사이를 잘게 쪼개어 많은 음표를 넣기도 한다. 일부분만을 반복하기도 하고, 반행과 역행도 쓰인다. 여러 가지 기교의 주제 변형으로 탄생한 새로운 멜로디들로 각 그림의 성격을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변주곡은 더욱 복잡한 기술로 이루어진다. 여러 성부에 있어서 복합적인 변형이 나타나고, 조성을 바꾸며 화성적 구조에 손을 대기도 한다. 대위법 역시 기본적으로 쓰이는 변주의 기술이다. 이러한 수많은 변주의 기술들이 한 변주 안에서 나타난다고 하면 무한한 조합의 가능성이 생겨나다. 오케스트라라면 악기를 바꾸어 가는 오케스트레이션에 의해 조합의 숫자는 무한대가 될 것이다. 라벨의 '볼레로'는 똑같은 소절이 계속 반복되는 것 같지만 악기들의 쓰임새는 매 소절마다 변한다. 작곡가의 상상력이 닿기만 한다면 그가 죽을 때까지라도 변주곡은 계속될 수 있는 것이다.

 

3. 시대별로 본 변주곡

 

  바로크 시대의 변주곡은 짧은 호흡 안에서 엄격한 화성 구조를 지켜나가며 변주를 만들어 나갔다. 파사칼리아와 사콘느가 그 대표적인 형식이었다. 그 중에 조금은 쉬운 파헬벨의 '카논'을 보자 저음부가 처음에 제시하는 화성 구조는 바뀌지 않고 그 위에 전개되는 대위법의 '밀물과 썰물'이 곡을 이어나간다. 작곡가는 곡을 끝내더라도 듣는 사람의 머릿속에는 아름다운 변주의 파도가 계속해서 밀려든다.

 

  고전주의 시대로 넘어오면 변주 능력은 연주가 겸 작곡가였던 음악가들의 음악성을 테스트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오늘날 비밥 재즈에서의 각 악기 연주자들이 애드립으로 경합하는 것과도 비슷했다. 실제로 변주 시합도 빈번히 있었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이 그런 시합에서 졌다는 기록은 없다. 천재란 뛰어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창조력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다.

 

  낭만주의 시대에 들어서면 변주에 의한 작곡법이 폭넓게 적용되며 변주의 진폭이 훨씬 커진다. 오케스트라의 발달은 그것을 더욱 부추겼다. 오케스트레이션으로 색채의 표현이 가능하게 되자 각 변주에는 색이 더해졌다.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을 보면 역시 각 변주마다 독특한 빛깔이 느껴진다.

 

  그럼 대표적인 변주곡을 알아보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바로 바흐의 골트베르크 변주곡이다. 이 곡은 변주곡의 역사상 금자탑으로 일컬어질 정도이며 이 작은 곡 속에 작은 우주가 들어 있다고 말하는 평론가가 있을 정도로 실로 다양하고 폭넓은 창조력과 변화무쌍함 속에서 꽉 찬 조형미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베토벤의 에로이카 변주곡도 상당히 유명하다.

 

4. 창조력의 원천

 

  변주는 짧은 멜로디를 변형시키는 것에서 시작하여 여러 가지 작곡 기법을 시험하는 바탕이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음악적 구조를 쌓아올리는 기반이 된다. 따라서 서양음악의 구조적인 바탕도 변주곡이 제공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교향곡들도 몇 개의 주제가 변형되고 변주되며 쌓아올려져 만들어진 것이다. 서양음악은 변주곡이라는 무한한 상상력의 바다를 그 원천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영원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료 : 객석 96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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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 26 Jan 2014 22:19:00
<![CDATA[ 벨 칸토(bel canto)란?]]> ★ 벨 칸토 bel canto ★

 

이탈리아 어로 '아름다운 가창법'이라는 뜻입니다.

 

대개는 18세기에서 19세기초의 이탈리아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목소리에 의한 창법을 가리킵니다. 또 17세기 중엽 이탈리아의 단순하고 서정적인 창법을 벨 칸토라 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L.로시, 카리시미가 대표적이며, 그 때까지 가사 우선의 스틸레라프레전타비보에 대한 반동으로 생겼는데, 선율과 가요적인 성격을 중요시한 창법입니다.

 

1858년 로시니는 벨 칸토 가수의 조건으로

        

1) 전체 성역에 걸쳐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닐 것,

2) 노력없이도 화려하게 부를 수 있도록 훈련되어있을 것,

3) 이탈리아 명가수의 노래를 듣고 거기서 배움으로써만 얻을 수 있는 뛰어난 가창법을 몸으로 숙달되어 있을 것 등을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오페라의 관현악 및 연주홀이 대규모화하고, 극적인 오페라의 제재가 채택되면서 중후한 창법이 대신하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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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 26 Jan 2014 22:18:27
<![CDATA[ 칸타타(Cantata)란?]]> ★ 칸타타(Cantata) ★

 

"노래하다"라는 뜻인 이탈리아어 cantare에서 유래되었고, 노래 불리워지는 곡을 뜻한다.

 

칸타타는 17세기 바로크 시대에 이탈리아의 모노디에서 생겨난 성악곡인데, 일관된 줄거리풍의 텍스트로 되어 있다. 아리아, 레치타티보, 중창, 합창 등으로 된 규모가 큰 곡이다.

 

여기에는 세속 칸타타와 교회 칸타타 등이 있는데, 세속 칸타타는 주로 17세기 이탈리아에서 발달하여 몇 개의 아리아, 레치타티보로 된 독창이다.

 

교회 칸타타는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독일에서 발달하여 코랄의 선율을 즐겨 사용하였고 합창이 현저하게 중요시 되었다.

바흐는 칸타타를 많이 썼는데, 그를 교회 칸타타의 완성자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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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 26 Jan 2014 22:18:06
<![CDATA[카덴차(Cadenza)란?]]> ★ 카덴차(Cadenza)에 대해서 ★

- 협주곡 속의 작은 독립국-

 

1. 카덴차에 들어가며

 

'카덴차'(cadenza)를 음악사전에서 찾다보면 실수로 '케이던스'(cadence)라는 항목에서 헤매게 되는 경우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로 실수가 아니다.

원래 카덴차와 케이던스는 둘 다 '떨어지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카데레'(cadere)를 어원으로 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즉 케이던스는 곡의 종지 부분에서 '곡이 어떤 모습으로 낙착되다.

끝맺다'라는 뜻으로 마침꼴의 화성 구조를 나타내는 단어로 쓰이게 된 것이며, 카덴차는 거기서 또 파생되어 '마침꼴의 화성 구조 안에 삽입되어 독주자가 자신의 기교를 과시하는 짧은 악구'를 가리키게 된 것이다.

따라서 협주곡에서의 카덴차의 자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마침꼴의 화성 구조를 알아둘 필요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 여기서는 협주곡을 중심으로 한 카덴차에 대하여 알아보자.

 

2. 협주곡에서의 카덴차의 자리

 

  국민학교 때의 음악 시간으로 돌아가 보자. C장조의 으뜸 3화음이 '도 미 솔'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거기에서 두 번 자리바꿈한 것을 4 6화음이라 한다.

언뜻 보기에는 어려운 것 같지만 아무 것도 아니다. '솔 도 미', 즉 앞의 두 음이 차례대로 위로 올라가 쌓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한 번 피아노 앞에 앉아서 두 화음을 번갈아 가며 쳐보자.

똑같은 음을 쓰지만 음의 위치가 바뀐 것에 의해 두 화음이 주는 느낌은 조금 달라졌다.

 4 6화음은 조금 더 격앙된 느낌, 고취된 느낌을 줄 것이다. 따라서 4 6화음을 쓰는 부분은 '자, 이제 독주자의 화려한 기교가 등장합니다.'라고 카덴차의 시작을 소개하는 관현악의 팡파르로서 쓰이게 되었다. 화려한 카덴차의 끝에 독주자는 긴 트릴 부분을 붙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면 오케스트라는 그 트릴을 딸림 7화음으로 감싸안으며 받아들인다.

그리고 으뜸화음의 종지부가 악장의 끝을 알린다.

 

3. 전체에 녹아드는 카덴차의 승리

 

  이번에는 영화 '파리넬리'의 한 장면을 떠올려 보자. "파리넬리가 어떤 아리아의 마지막 부분에서 고음의 바이브레이션을 길게 끈다.

그 아리아를 듣던 여성 청중들이 잇달아 혼절한다." 이 장면은 초기의 카덴차를 너무나 잘 보여주는 컷이 아닐 수 없다. 바로크 시대에 주로 오페라에서 정말 아주 짧고 단순한 모습으로 쓰이던 카덴차는 기악으로 그 영역을 넓히며 점점 길고 화려하게 변하게 된다.

 

  모차르트의 시대에 이르면 천재 작곡가이며 동시에 솔리스트로도 유명했던 음악가들에 의해 카덴차는 협주곡 속에 완전히 정착하게 되었다.

특히 모차르트는 카덴차를 정말 자유롭게 구사했다고 한다.

 미리 (머리 속에) 작곡해 놓은 카덴차와 연주가 있는 날의 분위기에 맞는 악상을 적절히 섞어 완전히 즉흥으로 연주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가령 파리에서 어떤 피아노 협주곡을 초연한다고 할 때 모차르트는 그때 파리에서 가장 유행하는 멜로디로 화려한 임프로비제이션을 선보이는 카덴차를 넣은 것이다.

베토벤은 그러한 카덴차에 상당한 불만을 가졌다.

유난히도 음악의 완결된 구조와 통일성을 중시하던 베토벤은 카덴차로 인해 곡 전체의 통일성이 망가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카덴차를 악장의 끝에 삽입된 독주로 된 전개부로서 다루었다.

 

  19세기에 이르면 화려한 기교파연주가들이 작곡가의 명성을 능가하는 경우도 많이 생긴다.

그에 따라 협주곡에서의 카덴차는 더욱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되었지만 점점 더 공허한 기교의 곡예로 위험스런 모습을 띠게 된다.

그리고 작곡가들도 앞다투어 자신의 곡이 아닌 협주곡의 카덴차를 작곡하기에 이른다. 브리튼이 작곡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22번의 카덴차가 후자의 예라면, 기돈 크레머(그는 비록 20세기의 비루투오조이지만)가 작곡한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의 카덴차는 전자의 예이다.

하지만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그 악장의 주제들을 바탕으로 작곡되어 곡의 구조와 통일성에 밀착한 카덴차가 가장 적절한 것으로 살아남게 되었다.

기교의 화려한 과시보다는 베토벤이 의도한 '악장 종결 부분에 담긴 새로운 발전부'의 개념이 승리하게 된 것이다.

 

4. 요아힘과 크라이슬러의 대결

 

  베토벤과 브람스의 위대한 D장조 바이올린 협주곡의 첫 악장에 두 작곡가는 카덴차 부분을 비워놓았다. 19세기 후반의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과 20세기 초반의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 크라이슬러는 두 곡에 모두 카덴차를 남기고 있는데, 네 개의 카덴차 그 어느 것이나 원곡의 교향적인 악상을 해치지 않으면서 구조 속으로 용해되는 뛰어난 것이다.

현재는 베토벤에서는 크라이슬러의 것이, 브람스에서는 요아힘의 것이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다.

 

1) 베토벤의 협주곡

 

 - 요아힘

  제1주제의 변형으로 시작되는 행진곡으로 시작되어 트릴 위주의 매우 자유로운 환상곡이 전개된다. 1주제의 멜로디 위주의 더블 스토핑의 부분을 거쳐 토카타풍의 바른 패시지가 고음에서의 화려한 기교를 선보인다.

 

 - 크라이슬러

  제1주제가 거의 그대로 제시된 후 환상곡 풍의 전개가 이루어진다.

두 개의 선율이 확실히 부각되어 독립적으로 대위를 이루게 연주하는 고난도의 더블 스토핑이 인상적이다. 주제의 멜로디를 마치 두 대의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듯하다.

 

2) 브람스의 협주곡

 

 - 요아힘

  브람스와 거의 공동작업으로 협주곡을 완성시킨 요아힘이기에 그의 카덴차는 절대적이다.

더블 스토핑보다는 집시풍의 주제에 집중하여 집시풍의 환상곡을 전개해 나간다.

 

 - 크라이슬러

  제1주제와 제2주제가 적절히 발전을 보인다. 트릴의 성부와 멜로디의 성부를 함께 쓰는 더블 스토핑이 돋보인다.

중간 부분에 바흐의 샤콘느의 중간 부분 같은 밝은 조성의 상승과 비상의 부분이 놓인다. 상당히 잘된 카덴차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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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 26 Jan 2014 22:17:41
<![CDATA[ 【서양음악】]]> 〈고대음악〉 고대 메소포타미아·이집트 등에서 이미 상당히 고도로 발달한 음악이 있었다는 것은 당시의 그림이나 조각·기록·전승(傳承)·악기 등으로도 추정할 수 있다.

단지 음악작품 그 자체는 한 곡도 남아 있지 않아 그 음악의 연구는 어디까지나 간접적인 추정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대 유대의 음악에 대해서는 성서에도 많은 기록이 있어 유대교의 제사와 음악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구약성서의 《시편(詩篇)》도 성가의 가사(歌詞)로서 본래는 일정한 선율에 따라서 노래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유대교도들 사이에는 각기 독자적인 시편창법(詩篇唱法)·성서낭창법(聖書朗唱法)·성가 등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그 가운데는 고대적인 요소를 남기고 있는 부분이 적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어 있다.

또한 그와 그리스도교 성가와의 관련에 대해서도 여러 각도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음악은 사회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찬가·무도가·결혼가·조가(弔歌) 등 여러 종류의 가곡이 쓰여졌다.

호메로스, 사포, 아나크레온 등의 시(詩)도 본래는 낭창을 위한 가사였으며, 소포클레스, 아리스토파네스 등의 고대극도 무대 출연자나 코러스(chorus)에 의한 낭창, 기악연주자에 의한 반주 등에 의해서 연주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17세기 초 근대 오페라의 탄생에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또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피타고라스 등은 각기 음악의 본질·윤리성·물리성에 대해 논하여 음조직·선법(旋法)·리듬 등에 관한 그리스의 독특한 음악이론을 확립해 그 후의 유럽 음악이론의 발전에도 중요한 영향력을 끼쳤다.

 

〈중세의 음악〉 중세 유럽의 음악사는 그리스도교의 전례(典禮)에 연결되었던 성가의 성립에서 비롯된다. 초기 그리스도교성가는 기본적으로는 고대 유대교성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되는데 거기에 여러 지방적 요소가 가해져 여러 동방교회성가 및 서방교회성가가 성립되었다.

특히 로마 가톨릭교회가 서유럽세계에 세력을 뻗침과 더불어 로마성가가 큰 발전을 보여 그 후의 유럽음악의 기조(基調)가 되었다.

이 성가의 성립에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가 이룩한 업적이 컸다고 전하여 그레고리오성가라고도 불리며, 오늘날에도 로마교회의 가장 정통적인 전례음악으로 쓰이고 있다.

한편 세속음악분야에서도 11세기에서 14세기에 걸쳐 프랑스의 트루바두르·트루베르, 독일의 미네젱거 등의 음유시인(吟遊詩人)에 의한 속어(俗語)의 기사가곡(騎士歌曲)이 번성하였다.

이들 음악은 그레고리오성가를 포함해서 원칙적으로는 교회선법(敎會旋法)에 의한 단성부 음악이었으나, 9세기경부터 다성부의 음악도 나타나게 되었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다성음악의 실례는 9세기경의 음악이론서 《무시카엔킬리아디스》에 기록되어 있는 단순한 형태의 오르가눔이나, 실제로는 더욱 복잡한 형태의 것이 이루어졌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유럽의 다성음악이 이 이론서에 의해서 창시된 것은 결코 아니고, 오히려 그 이전부터 다성음악은 민속적·즉흥적인 형태로 연주되었을 것이다.

초기 다성음악의 자료는 극히 적고 기보(記譜)도 해독(解讀) 불가능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12세기에 이르면 프랑스의 성마르시알 수도원이나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중심으로 발전을 이루고 특히 12세기 말에서 13세기에 걸쳐서는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중심으로 레오니누스·페로티누스 등의 2성(聲) 내지 4성의 오르가눔이 나타났다.

 

또한 클라우술라·모테트·콘둑투스 등의 악곡도 나타나 중세 유럽음악의 정점(頂點)이라고도 할 발전을 보였다(노트르담악파). 14세기에 들자 신생(新生)에의 시대경향을 반영해 사랑·자연미 등을 노래한 세속작품의 수가 증대하고 2박자가 도입되었으며 리듬도 다양해져 아르스 노바(신예술)의 음악이 이루어졌다.

특히 프랑스의 기욤 드 마쇼(1330경∼77경)의 음악에서는 13세기 아르스 안티콰(고예술) 음악의 세속화와 새로운 표현에의 지향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시대에 이탈리아의 자코포 다 보로냐(14세기 중반), F.란디니(1325∼97) 등의 세속작품에도 새로운 경향이 나타났고, 영국에서도 3도·5도 등을 중용하는 독특한 다성음악 기법에다 종래에는 없던 참신함을 보였다.

그리고 15세기 초의 J.던스터블, L.파우어 등의 영국음악은 그 후의 대륙음악에 큰 영향을 끼쳤다.

 

〈르네상스 음악〉 15세기 초에서 중반에 걸쳐 부르고뉴공국(公國)의 속령인 플랑드르 출신의 음악가들은 중세 말의 프랑스·영국·이탈리아 등의 요소를 종합해서 새로이 꾸민 국제적인 음악을 형성하여 갔다.

그 가운데 특히 뒤페의 활약은 괄목할 만하며 그에 의해 음악의 르네상스가 비롯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뒤페 이후는 다시 플랑드르 출신의 음악가 J.오케겜, J.오브레히트, H.이자크 등이 그를 이어 전유럽의 궁정·대성당에서 활동하였으며 그 가운데서도 조스캥 데 푸레의 음악작품은 르네상스음악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피엘 드 라 류, A.빌라르트, 필립 데 몬테, 라소 등이 16세기 중반에서 후반에 걸쳐 배출되어 플랑드르악파의 성악양식을 바탕으로 한 대위기법(對位技法)을 확립, 이는 국제적인 음악어법으로 적용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다른 나라에서도 플랑드르의 기법을 기조(基調)로 해서 각기 민족적인 경향을 반영한 음악을 발전시켜 나갔고, 이탈리아에서는 C.페스타, 루차스키, 마렌치오, 제수알도, 몬테베르디 등의 세속적인 마드리갈과 팔레스트리나의 교회음악을 낳기에 이르렀다.

또 상업도시 베네치아도 그 기풍을 반영한 색채적인 교회음악을 발전시켜 가브리엘리 등의 작품은 다음 대의 바로크음악의 성립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프랑스의 C.잔캥, 세르미시 등의 다성샹송, 에스파냐의 모랄레스, 빅토리아 등의 교회음악,밀란, 카베손 등의 기악음악, 영국의 T.탤리스, W.버드, T.몰리, O.기번스 등의 교회음악과 마드리갈 등도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초에 걸친 르네상스음악의 대표적인 악곡들이다. 독일도 16세기에 들어서자 플랑드르, 그 후반에는 이탈리아의 영향 아래 향상을 지속하여, 특히 악기제작과 기악음악면에서 독자적인 면을 개척하여 그 후에 오는 독일음악의 황금시대를 다졌다.

또 16세기 전반에 시작된 종교개혁운동에 대응해서 새로운 종교이념에 의한 종교음악이 성립되어 특히 독일 루터파의 코랄, 프랑스 칼뱅파의 시편가, 영국교회의 성가 등은 그 후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다시 이 세기에는 악보 인쇄술이 발명·보급되고 또한 많은 음악이론서, 계몽적인 음악입문서가 간행되어 폭넓은 음악보급에 도움이 되었다.

 

〈바로크 음악〉 16세기의 르네상스음악에 이어 17~18세기 전반에는 바로크음악이 전개되었다. 이 음악은 원칙적으로 통주저음(通奏低音:書法)에 바탕을 두고 셈[强]과 여림[弱], 합주와 독주, 명(明)과 암(暗)이라는 두 극(極)의 대비효과로써 심리적으로 감동과 극감(劇感)을 이끌어내려 한 것으로, 이 시대 미술작품에서의 바로크양식에 대응한다.

바로크음악은 주로 극음악과 기악음악 분야에서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전유럽에서 발전하였는데 극음악 가운데서도 가장 비중이 큰 것은 오페라이다.

극과 음악을 결합하려는 시도는 그 이전부터 이루어졌으나 16세기 말의 피렌체의 G.카치니, J.페리 등이 당시의 인문주의 이념에 입각, 고대 그리스극(劇)의 재흥을 꾀하여 서창풍(敍唱風)의 모노디양식을 창시해서 근대 오페라의 방향을 잡았고, 그 후 몬테베르디의 작품은 이를 결정적인 것으로 하였다. 1637년에는 베네치아에 공개 오페라극장이 개설되어 삽시간에 유럽 전역에 파급되었다. A.체스티, A.스트라델라, A.스카를라티, 18세기의 페르골레시, 요멜리 등의 공헌에 힘입어 초기의 모노디양식은 근대 오페라형태로 변화되어 갔다.

또한 오페라의 깊은 영향을 받고 종교적인 제재(題材)에 의한 극음악·오라토리오·수난곡(受難曲:패션) 등도 작곡되어 G.카리시미 등의 작품을 낳았다.

극음악의 이념을 실내악적인 방향으로 추구한 칸타타에도 볼 만한 작품이 적지 않다. 한편 기악음악의 분야에서도 이탈리아의 주도권이 두드러졌다.

오르간음악의 프레스코발디, 현악기를 중심으로 한 기악합주곡분야의 비탈리, 토렐리, 코렐리, 비발디, 독주크라비아에서의 도메니코 스카를라티 등의 작품은 종래의 성악양식에 의한 서법(書法)을 완전히 청산하고 기악 독자적인 이념을 추구하여 토카타·푸가·소나타 콘체르트 등의 기악형식을 확립하였고, 또한 장·단조에 의한 기능화성법의 바탕을 이루었다.

 

17~18세기의 이탈리아 출신의 음악가들은 전유럽의 악단에서 활약하여 이탈리아음악이 곧바로 국제음악으로 통용되었는데, 프랑스·영국·독일 등도 각기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독자적인 음악을 전개하여 나갔다.

프랑스의 륄리, 캉프라, 쿠프랭, 라모 등, 영국의 J.블로, H.퍼셀 등의 음악작품이 그것이다. 독일에서는 특히 프로테스탄트 작곡가의 활약이 눈에 띄며 종교음악·오르간음악의 장르에서 본고장의 이탈리아를 능가하는 발전을 보여 17세기의 슈츠, 샤이트, 샤인, D.북스테후데, 파헬벨 등의 작품이 나왔다. 크라비아·기악합주곡의 장르에서도 걸작이 적지 않아 특히 텔레만의 이름은 높았다.

이와 같이 바로크기는 근대음악의 탄생시대이고 성장시대였는데, 이 시기의 최후에 나타나 여러 경향의 음악을 종합해, 기념비적인 음악작품을 창조한 사람이 모두 1685년생인 헨델과 J.S.바흐의 두 사람이다.

또 기악음악의 발전에 때맞추어 중세 이래의 여러 악기가 개량되어 새로운 종류가 생겨났다.

그 중에서도 특히 바이올린·오르간·쳄발로 등이 연주되었고 18세기 초에는 피아노도 발명되었다.

 

〈근대음악(고전파·낭만파·국민악파)〉 유럽 근대 시민사회의 성립과 보조를 맞추어 18세기 중반부터 서서히 근대음악이 형성되어 가기 시작했다.

전고전파로 불리는 독일의 크라운형제, C.P.E.바흐 및 J.C.바흐, J.슈타미츠, 오스트리아의 몬, 이탈리아의 산 마르티니, 벨기에의 고세크, 클레토리 등의 기악음악, 그리고 독일의 글루크, 이탈리아의 파이시엘로와 치마로사 등의 오페라작품 등은 각기 독자적인 방법으로 종래의 바로크음악과는 다른 방향을 추구하였다.

이들의 음악적 시도에 이어서 근대음악의 기초를 확립한 것이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걸쳐 빈을 중심으로 활약한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3인, 이른바 빈고전파로 불리는 음악가들이다.

그들의 음악은 바로크음악의 통주저음서법(通奏低音書法)을 배제하고 장·단조에 입각한 호모포니서법을 중핵(中核)으로 한 것으로 심포니(교향곡), 콘체르트(협주곡), 소나타(奏鳴曲) 등 소나타형식에 의한 악장(樂章)을 중심으로 4, 또는 3 악장으로 구성된 순 기악양식의 곡종(曲種)을 즐겨 썼다. 하이든의 교향곡이나 현악사중주곡에 있어 형식에의 착실한 탐구, 모차르트의 각종 기악작품에서의 자유롭고 다양한 음악적 전개, 또 베토벤의 9개의 교향곡에서 보이는 강렬한 인간적인 표현의욕 등은 유럽 음악사상 특히 주목되는 것이며, 20세기에 들어서도 더욱 넓은 공감(共感)을 갖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이들의 성악곡 가운데도 중요한 작품이 있으며, 특히 하이든의 종교음악, 모차르트의 오페라와 종교음악, 베토벤의 《장엄미사곡》, 다시 《제9교향곡》에서의 성악의 도입 시도 등은 독자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19세기 초인 베토벤의 만년(1827년 사망)부터 음악은 낭만적인 경향을 띠게 되었다.

고전파의 절대음악형식도 이에 이르러서는 작곡가의 주관적인 시정표출(詩情表出)의 매체로써 이용되게 되고, 또 가곡이나 소(小)피아노곡이 애호를 받게 되었다.

다시 낭만적인 심정은 향토적인 것, 민족적인 것의 재인식으로 발전하여 베버의 오페라 《마탄(魔彈)의 사수(射手)》와 같은 작품을 낳게 하였다.

그를 이은 슈베르트, 멘델스존, 쇼팽, 슈만 등 낭만파로 불리는 음악가들의 작품에는 방향의 차이는 있지만 이들의 경향은 공통되어 있는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한편 베를리오즈, 리스트 등의 대편성 관현악에 의한 표제음악(標題音樂), 바그너의 악극 등은 전설·희곡·사상·인생의 현실과 사랑의 모든 것을 음악 안에 포괄하려 하여 음악세계의 무한한 확대를 시도하였다.

특히 바그너가 당시의 유럽 문화계에 끼친 영향은 절대적인 것이며, 그 후에도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에 걸쳐 브루크너, 말러, R.슈트라우스 등의 작품방향을 규정하였다.

이와 같은 경향에 대해서 브람스는 신고전주의라고도 할 수 있는 작풍으로 절대기악양식의 회복을 꾀하였고, 또 요한 슈트라우스 등의 통속적인 오페레타도 갈채를 받았다.

민족적인 것을 재인식한 낭만파의 음악은 독일 이외의 나라에서도 큰 반응을 불러일으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이른바 국민음악파의 대두를 촉진시켰다.

러시아의 글린카, 그를 잇는 러시아 5인조에 속하는 보로딘, 무소르그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등, 다시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등도 넓은 의미의 국민음악파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체코슬로바키아의 스메타나와 보헤미아의 드보르자크, 노르웨이의 그리그, 핀란드의 시벨리우스, 에스파냐의 알베니스, 그라나도스, 팔랴 등에서도 작풍에 다소의 차이는 있어도 국민음악파의 두드러진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19세기에도 순 기악음악에는 두드러진 것이 없고 오페라가 널리 애호되고 있었다. 19세기 초에 로시니, 그에 이어 도니체티, 벨리니 등은 선율미(旋律美)를 중심으로 한 많은 오페라를 작곡하였고 이어 바그너와 같은 해(1813)에 태어난 베르디는 그 선율미에다 음악과 극의 합일을 꾀하여 이탈리아오페라를 한층 더 높은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베르디의 뒤에는 베리즈모(사실파) 오페라로 불리는 마스카니, 레온카발로, 푸치니 등의 오페라가 이어졌다.

또 프랑스에서는 구노, 비제 등의 오페라, 프랑크, 생상스, 댕디 등의 기악작품에 프랑스 특유의 새로운 음악적 표현이 나타나고 특히 포레의 작품에 이르러 결정적인 것이 되어 다음 대의 드뷔시 등에 계승되게 되었다.

 

〈현대의 음악〉 20세기의 음악은 다른 예술·문화·과학·사상 등과 같이 다양한 변화와 혼돈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미 바그너의 음악에서 과도한 반음(半音)의 사용으로 종래의 기능화성법은 하나의 붕괴점에 이르렀는데 다시 드뷔시는 직관적인 인상을 음형상화(音形象化)하는 시도로서 화성을 색채로 쓰고, 또한 중세의 선법이나 이국적인 5음음계, 반음이 없는 전음음계(全音音階) 등을 사용하여 감각적인 세계를 전개하여 갔다.

이 인상파(인상파음악)의 방향은 다시 라벨 등에 계승되었다.

또 러시아의 스트라빈스키의 초기 발레곡 《불새[火鳥]》 《봄의 제전》 등은 포비슴(야수파)이라고도 할 수 있는 원시적인 리듬과 색채감으로 격렬한 충동을 이끌어냈고, 또한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쇤베르크, 베르크, 베베른 등의 12음음악에 의해 조성(調性)은 완전히 파괴되어 그에 대신하는 음렬(音列)에 새로운 질서가 요구되었다.

다시 코다이, 바르토크 등에 의한 민족주의적 경향, 제1차 세계대전 후의 스트라빈스키, 힌데미트, 미요, 오네게르, 플랑크 등의 프랑스 6인조 등 신고전파의 경향도 주목된다.

또 아메리카 흑인의 음악에서 비롯된 재즈는 그 신선한 리듬으로 통속음악으로서뿐만 아니라 예술음악에서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지녔다.

제2차 세계대전 후는 구상음악, 전자음악, 다시 미국의 존 케이지에서 비롯되는 우연성의 음악 등 종래의 음악개념을 근본적으로 뒤엎는 전위적인 시도도 행하여져 혼돈은 한층 깊어졌다.

이와 같은 종류의 창작은 거의 일반청중이 관여하지 않은 장소에서 이루어져, 청중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18∼19세기의 음악에 열중하고 있는 상황에 있다.

이와 같은 혼돈이 혼돈으로 끝이 날 것인가, 아니면 그 안에서 이제까지 있어온 것과 같은 하나의 질서와 체계가 생겨날 것인가는 아직도 불명하며, 장래의 과제로 남겨져 있다.

 

【동양음악】 동양에서는 문화의 형성에도 지역화·연대화를 달리하는 중국문화·인도문화·오리엔트문화의 3대 문화계가 있어 유럽문화와 대립되고 있다.

음악도 이에 따라 중국음악계(중국·한국·일본·몽골·베트남·라오스·타이·캄보디아 등), 인도음악계(인도·파키스탄·스리랑카·미얀마·타이·캄보디아·라오스·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아라비아음악계(아랍諸國·이란·터키·아프가니스탄·북아프리카 이슬람敎圈·발칸諸國·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의 3대 계통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들 음악은 모두 음률·음계·선법·미적(美的) 평가 등에서 모든 것을 달리하고 있으며, 동양음악으로서의 일관성은 없다.

또 동양 여러 민족들은 이 3대 계통의 하나를 바로 전승하거나 또는 둘 이상의 계통을 잘 소화해서 각기 민족음악을 형성하고 있다. 예를 들면 중국음악에 있어서도 그들의 고유음악에 인도·페르시아계의 음악이 혼교(混交)해서 수·당시대의 중국음악 최성기를 이루었다.

인도네시아도 민족적 원시음악에 인도음악이 힌두교·불교와 함께 도입되고, 또 여기에 중세 이슬람교와 함께 이슬람의 악기가 들어온데다 다시 근세에 이르러서는 에스파냐·네덜란드 등의 영향을 받아 오늘날의 인도네시아음악이 성립된 것이다.

 

【한국음악】 한국에서는 상고시대로부터 내려온 고유한 향악(鄕樂)에 중국에서 당악(唐樂)이 건너와 함께 어울려 내려왔고, 고려시대에는 다시 송악(宋樂)이 건너와 크게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1116년(예종 11) 《대성아악(大晟雅樂)》이 들어옴으로써 한국의 음악은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게 되고,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全期)를 통해 아악은 궁중의 정악(正樂)으로, 향악 등의 재래음악은 속악(俗樂)으로 그 나름대로 각각 틀을 잡아왔다.

특히 조선의 세종 이후 아악은 다른 동양음악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독자적인 양식으로 국악화의 길을 꾸준히 걸었다.

그러나 1880년대 이후 서서히 서양음악이 스며들고, 거기에 1910년 이후 일제가 들어와서 제례음악(祭禮音樂) 등을 폐지함에 따라 아악은 위축일로의 길을 걸어왔으나, 동양 최고의 악으로 현재 한국에만 남아 있고 당악·속악도 아악과 더불어 국악이란 이름으로 보존 전승되어오고 있다.

이들 국악은 서양음악과 어울려 내용은 국악을 주제로 하며, 형식은 서양음악을 빌어 작곡·연주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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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 26 Jan 2014 22:17:11
<![CDATA[음악이란 무엇인가?]]> 음악이란...

 

 소리를 소재로 하여 박자·선율·화성·음색 등을 일정한 법칙과 형식으로 종합해서 사상과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 그렇다고 모든 소리가 소재로 쓰여지는 것은 아니며 주로 악음(樂音)에 한정된다.

또 악음의 종합이 그대로 음악이 되는 것도 아니며 이는 넓은 의미에서의 인간의 정신활동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음악은 시대나 민족에 따라 다양한데 그것은 각기 그 시대나 민족이 어떻게 독자적인 형식으로 소리를 포착하였는가 하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음악은 일반적으로 ‘시간예술’로 불리고 있다.

회화·조각·건축물 등의 조형예술은 3차원의 세계에 실재하는 구체적인 소재에 바탕을 두고 공간적인 대상을, 말하자면 항구적인 형태로 창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나, 음악은 문예나 무용과 더불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성(生成), 전개되어 간다.

따라서 조형예술을 정적이고 공간예술이라 부르는 데 대해 음악 등은 동적이고 시간예술이라 불리는데, 같은 시간예술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각각 독자적인 특성을 갖추고 있다.

곧 문예는 언어의 사용으로 관념적인 의미내용을 표현하고, 무용은 무용수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함으로써 시각적이고 형상적인 데 반해 음악은 소재인 소리의 순수성(純粹性)에다 시간적인 성질에 바탕을 둔, 가장 단적인 시간예술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음악은 발생적으로도 언어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또한 무용·연극과도 깊은 관계를 지니고 있다. 음악은 이와 같은 예술의 장르와 연관을 갖고서 독자적인 형식이 창출되는 것 외에도 회화 등과는 달리 그 때마다 재현할 필요가 있어, 이와 같은 의미로서는 재현예술로서의 공통적인 기반 위에 성립되어 있다.

 

음악을 ‘유동하는 건축’, 건축을 ‘언(凍) 음악’이라 부르는 것은 비유적(比喩的)인 표현이기는 하나 소재가 지닌 순수한 질서성(秩序性)이나 통일성이라는 점에서 공통된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음악이라는 말은 ‘music’과 대응하는 말인데 뮤직은 원래 그리스어·라틴어에서 유래하였다.

그리스어 무시케(musike)는 무사(musa)들이 관장하는 기예(技藝)라는 뜻이다.

무사(複數로는 무사이)는 그리스신화의 주신(主神) 제우스가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에게 낳게 한 9명의 여신으로, 시신(詩神), 또는 시의 여신으로 번역되며, 각기 서사시·서정시·비극·희극·무용·역사·천문 등을 맡아보았다.

따라서 그리스에서의 무시케는 아주 넓은 의미를 지녔고, 특히 역사나 천문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무시케가 시간이나 운동과 깊은 관계를 지닌 인간활동의 총체를 나타내기 때문이며, 역사나 천문도 그와 같은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라틴어의 무시카(musica)도 독특한 의미를 가진 말이다.

소리와 울림에 관한 이론 및 실천의 양면을 포함하는 이 무시케는 기초학과로서의 자유7과 가운데 수(數)에 관계되는 4과의 하나가 되어 있었다.

뮤직이라는 의미로서의 음악이 소리를 소재로 하는 예술활동으로서 파악되기에 이른 것은 근세 이후의 일이다.

동양에서도 처음부터 음악이라는 말이 쓰인 것은 아니다.

중국 및 한국에서는 옛날부터 ‘악(樂)’이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쓰여왔다.

이 말은 원래 악기와 이를 거는 걸게(架)를 나타내는 상형문자(象形文字)였다.

그리고 중국의 고대나 한국에서의 ‘악’은 고대 그리스의 무시케와 같이 도덕이나 윤리와 밀접 불가분의 관계를 지녀 이를 예악(禮樂)이라고 하였다.

한국에서는 개항 이후 1880년대에 선교사들이 들여온 서양음악을 아악(雅樂) 등 재래의 음악과 구분해서 양악이라 불렀는데 일반인이 오늘날과 같은 상식적인 의미로 쓰기 시작한 것은 1910년 전후의 일이다.

 

【음악의 소재와 요소】 음악의 소재인 소리는 주로 주기성(周期性)을 지닌 규칙적인 진동이 있는 소리, 즉 일정한 높이를 지닌 악음이며 이는 성음(聲音)과 넓은 의미의 악기음으로 성립되어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순음(純音)은 포함되지 않는다.

또 현실의 음악에서는 음향학적으로 소음(騷音)으로 치는 소리도 때때로 미적 효과를 수반해서 쓰이고 있다.

현대의 구상음악이나 전자음악에서는 음악의 음소재(音素材)가 크게 확대되었다.

음악은 일정한 질서 아래 악음이 조화·결합되어 성립되며, 음악이 지닌 기본적인 속성은 길이[持續]와 높이이고 이 밖에 음색과 강약도 포함된다.

계기(繼起)하는 소리의 길이에 일정한 시간적 질서를 부여하면 리듬(律動)이 생기고, 높이가 다른 둘 이상의 소리를 수평적·계기적으로 결합하면 멜로디(旋律)가, 수직적·동시적으로 결합하면 넓은 뜻에서의 하모니(和聲)가 생긴다.

이들 리듬·멜로디·하모니를 보통 음악의 3요소라 하여 음악작품의 불가결한 구성요소로 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주로 근대 서양음악에 바탕을 둔 것이며 음악현상을 시대적·지역적으로 널리 보면 화성이 결여된 음악도 적지 않다.

또 특수한 경우, 일정한 음률을 지니지 않는 타악기에 의한 음악은 화성·선율 모두가 결여되었지만 음악으로서 충분히 성립된다.

이에 비해서 리듬이 결여된 음악은 생각할 수 없다.

멜로디만의 음악이라도 그것이 멜로디로서 음악적으로 파악될 수 있는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일정한 시간적 질서(리듬)에 지배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3요소 가운데 리듬이 음악에 있어 가장 근원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음악의 형식】 음악에서 형식의 개념은 보통 두 가지 의미로 생각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음악의 소재나 요소에 질서를 부여하고 의미 있는 통일체를 형성하는 원리로서의 형식으로, 내용개념과 대치(對置)되어 음악미학의 고찰자료가 된다.

음악은 뛰어난 형식적 예술이라 불리고 있다.

이것은 가사나 표제를 수반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음악작품의 의미내용은 형식에 의해서 보장되어 순수한 절대음악에서는 형식 그 자체가 음악의 내용이라고까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E.한슬리크가 음악은 “울려퍼지면서 운동하는 형식이다”라고 말한 바와 같이 조형예술과는 달리 음악의 형식은 그 운동성, 즉 시간적 경과 속에서 현상되고 파악되는 데에 특징이 있다.

그 둘째는 개개의 음악작품이 지닌 형태 내지 형식구조이다.

이를 악식(樂式)이라 하며 그 이론이 악식론, 또는 음악형식학이다.

음악형식은 많은 구성요소의 질서 있는 결합·배열로 해서 성립되는데, 일반적으로 의미통일체의 최소단위를 동기(動機:모티프)라고 한다.

개개의 음의 소리가 언어에서의 음절(音節)이라고 한다면 동기는 단어에 해당한다.

또 동기의 발전 병렬(竝列)로써 악구(樂句:프레이즈)가 생기며, 악구가 모여서 어떤 의미형상(意味形象)을 만들면 언어의 글에 해당하는 악절(樂節)이 성립된다. 고전파음악의 경우, 악절은 일반적으로 전악절과 후악절로 이루어지는데, 양자의 관계에는 원리적으로 세 개의 가능성이 있다.

즉 순수한 반복(a~a), 변화한 반복(a~a'), 대비(對比:a∼b)가 그것이다.

이들은 음악형식의 기본적인 원리로 이것이 복잡하게 조화·결합되어 예술음악이 성립된다.

예를 들면 변주곡형식은 ‘변화한 반복’이며, 소나타형식이나 론도형식은 반복과 대비를 다른 형식으로 결합한 것으로 음악형식은 궁극적으로는 ‘통일과 다양’이라는 원리의 여러 표현방법으로 환원된다. 또한 성악곡, 특히 중세·르네상스의 성악곡은 가사의 내용에 의존하는 면이 많다.

기본적인 원리는 개개의 형식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시대·민족·개인 등에 따라 달라지는데 구체적인 작품의 형식은 각 양식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형식은 악종(樂種)과 혼동되기 쉽다.

예를 들면 교향곡이나 피아노 소나타는 악종(악곡의 타입)이지 엄밀한 의미에서 형식이라고는 할 수 없다. 소나타형식이나 리트형식은 많은 악종에 공통되어 있으나 악종은 반드시 동일형식에 바탕을 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이든에 의해서 확립된 고전교향곡과 같이 한정된 경우 등에는 어느 정도 공통적인 형식을 인정할 수 있다.

 

【음악의 종류】 음악은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음악이 오늘날보다 넓게 해석되고 있던 시대에는 고대 아리스토쿠세노스의 ‘이론적 음악’과 ‘실천적 음악’, 중세 보에티우스의 ‘우주·천체의 조화’ ‘인간에 있어서의 육체와 혼의 조화’ ‘현실의 음악’이 있고, 15세기 말에 시작되는 ‘이론적 음악(음악의 학문적 연구)’ ‘창작적 음악(작곡)’, ‘실천적 음악(연주)’의 분류는 18세기에도 유효하였다.

근대적 의미에서 예술로서의 음악분류는 사회적 기능이나 용도에 따른다면 독일에서 말하는 ‘실용음악’과 ‘자유음악’으로 크게 나뉜다.

실용음악에는 교회음악·식탁음악·교육음악 등이 포함되고, 순수하고 자율적인 예술적 향수(享受)를 목적으로 하는 근대의 많은 음악은 ‘자유음악’에 속한다.

또한 세속음악과 종교음악, 예술음악과 민속음악, 순음악(純音樂)과 대중음악 내지 경음악, 클래식음악(serious music)과 포퓰러음악 등의 구별이 중복, 또는 모순이 수반되는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다. 또 장소에 따라 야외음악·실내음악·극장음악·가정음악, 또 다른 예술장르와의 결합에 따라서 영화음악·무용음악·극음악 등으로 분류되고 레코드음악·방송음악 등은 전달수단에 의한 분류이다. 다시 표현매체(表現媒體)에 따라 성악과 기악으로 대별되며 이것도 각기 편성이나 악기에 따라 분류된다. 그러나 현대음악에 있어 목소리가 일종의 악기로 다루어지는 경우는 이러한 구별이 곤란하게 된다. 이 밖에 표현내용이나 표현대상에서 보면 음악이 그 자체만으로도 자율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절대음악과, 음악 이외의 풍경·이야기·관념 등과 결합되는 비절대음악(描寫音樂·標題音樂 등)으로 구별되는데 양자의 구별은 명확하지 않다.

 

【음악의 기원】 음악의 기원에 대해서는 신화 전설에서 이야기되고 있는데, 그것은 음악에 대한 경외심(敬畏心)이나 민족에 따른 음악관의 다른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음악의 기원을 과학적으로 추구하려는 시도는 18세기 이래 계속되어 왔으나 항상 큰 장애에 부딪쳤다. 예를 들면 유아(幼兒)의 가창(歌唱)에서 음악의 원초적 형태를 생각하는 심리학적인 연구는, 유아가 환경에 지배된다고 하는 사실에 의해서 한계가 있고, 고고학적 연구도 유물의 연대나 수(數)에 한계가 있는 이상 음악의 기원에 이르기에는 어렵다.

오늘날 가장 유력한 것은 민족음악학(비교음악학)에 의해 현존하는 자연민족의 음악을 관찰하는 방법인데 여기에도 제약이 있다.

음악의 기원에 관한 과학적 연구는 음악의 근원에도 관계되는 문제이지만 사변적(思辨的) 추측을 면하기는 어렵다. 음악의 기원에 대한 주요학설은 다음과 같다.

① 성적 충동설(性的衝動說):다윈은 주로 새의 관찰에서 출발하여 이성을 끌어들이려는 성적 충동의 발성을 그 기원이라 하였으나 오늘날은 인정하기 어렵다.

② 언어억양설(言語抑揚說):18세기의 루소, 헤르더 이래 주장되어 스펜서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언어의 자연스런 억양에 음악선율의 기원을 구하려는 학설이다.

그러나 언어선율을 지니지 않는 자연민족도 있기 때문에 이 역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③ 감정표출설(感情表出說):흥분된 감정에 의해서 나오는 음성에 기원을 구하는 학설로 ②의 스펜서나 분트에 의해서 주장되었다. ②와 ③은 언어선율 내지 감정적 발성과 음악선율과의 근본적인 차이를 간과(看過)한 데 결점이 있다.

음악의 선율은 높이를 바꾸어도 선율의 의미가 본질적으로는 변화하지 않는다는 이고(移高) 가능성을 특징으로 함에 대해서 부르짖는 소리 등은 높이를 바꾸면 일반적으로 본래의 뜻을 잃는다.

④ 집단노동설:바라셰크, 뷔히너는 집단노동에서 여럿이 힘을 합쳐야 할 때에 지르는 “이영차 이영차” 등의 리듬현상에 기원을 구하였다.

그러나 인간사회에 있어 집단노동의 발생은 아주 오래된 것이 아니어서 이 학설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 밖에 음악의 마술적 기능에 입각하는 마술설, 신호로서의 음의 역할에서 발상(發想)한 신호설 등이 있으나 모두 추측의 영역을 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음악의 주요한 요소인 선율과 리듬의 어느 것을 원초적인 것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선율기원설과 리듬기원설이 대립되는데 이 또한 실증적으로 해명되지 않고 있다.

 

【음악의 역할】 음악은 처음부터 자율적인 예술로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원시시대에는 주술(呪術)·마술, 다시 노동과도 끊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

이러한 연결은 어느 시대에나 여러 형태로 변화하면서 존속되었고 종교와의 관계는 특히 깊어 전례(典禮)를 장식하는 일뿐만 아니라 기원(祈願)행위 자체일 수도 있다.

음악은 또한 고대 그리스사상에서 상징되는 것과 같이 인간형성과도 밀접하게 맺어져 윤리적인 교화(敎化)의 힘이 부여되어 있으며, 다시 감정이나 정조(情操)의 육성과도 관계되어 있다.

또한 관혼상제(冠婚喪祭)의 행사에 빠질 수 없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와 같은 행사를 장식하는 실제적 목적을 위해 만들어져 연주되는 일도 많다.

이와 같은 의미로는 사교음악이라 불리는 음악이나 교회의 전례음악도 마찬가지이다.

극장에서 연주되는 오페라 등도 그와 같은 사교적인 음악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작곡·연주·감상이라고 하는 음악의 과정은 예술음악에서는 명확하게 구별해서 행하여지는 경우가 많으나 원시시대나 미개인종(未開人種)의 음악, 또는 민속음악 등에서는 일체화되어 있어 구분하기 어렵다. 즉흥연주의 형태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작곡과 연주는 원래 밀접한 관계에 있으나 악보(樂譜)의 발생·발달이 작곡가로부터의 연주가의 분리를 촉진하고, 연주는 독자적인 재현예술·추창조(追創造)로서의 영역을 확립하여 갔다.

한편 듣는 쪽의 ‘감상’도 단순히 수동적인 데 머무르지 않고, 작곡가나 연주가의 의도나 기법을 판단하고 평가한다는 점에서 적극적·능동적인 행위인 것이며 그러한 의미로는 창조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비평’에의 길도 이로 해서 전개된다. 이와 같은 작곡에서 감상에 이르는 음악의 프로세스는 20세기에 이르러 급속하게 발달된 전기음향학에서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레코드의 발명에 의해서 음향의 보존, 재생의 가능성화,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발달, 테이프 녹음기술의 진보 등은 음악 실천형태의 근본적인 변혁까지 실현시키고 있다.

또 전기기술을 응용한 전달수단에 의해서 음악을 애호하는 층은 더욱 증대하고 있어, 종래 연주회장에서의 연주와 같은 전통적인 형태의 음악실천에서의 작곡가·연주가와 감상자의 접촉에는 달라진 존재방식이 등장하게 되었다.

또한 전기음향학의 발달은 신기한 음소재(音素材)를 제공하여 음악창조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다. 이른바 악음(樂音) 외에 전기음향학적 수단에 의해서 다종다양한 음향이 생겨나 구상음악이나 전자음악 등에 필요 불가결한 소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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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 26 Jan 2014 22: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