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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는 본래 광둥 성(廣東省) 쌍산 현(香山縣: 현재는 중산 시(中山市)의 일부)였다.
1553년(명나라 가정(嘉靖) 31년), 포르투갈은 현지 관리에게 「짐이 젖어서 육지에서 말리고 싶다」는 구실로 뇌물을 주고 마카오 체류를 인정받았고, 4년 뒤부터는 뇌물을 매년 건네면서 본격적으로 마카오에 눌러앉게 되었다. 1572년부터는 명나라 조정도 매년 500냥의 지대(地代)를 바치는 것을 조건으로 포르투갈인의 마카오 거주권을 인정하였다. 그런데 그 계기는, 포르투갈이 현지 관리에게 뇌물을 주는 자리에 우연히 조정에서 온 관리가 있었으므로, 부정(不正)이 발각되는 것을 두려워한 광동성의 관리가 받은 500냥을 부득이 국고에 납입했기 때문인 듯하다. 해적 정벌을 원조한 공적으로 포르투갈인에게 마카오 거주권을 주었다는 설(說)은 18세기에 포르투갈인이 창작한 이야기이다.[1] 처음 정착할 당시 포르투갈인이 마조각(?祖閣, 묘) 근처에 살았는데, 현지인에게 그곳의 지명을 물으니 현지인은 묘의 이름을 묻는 것으로 착각하여 "마조각"이라고 알려주었는데, 이것이 원인이 되어 마카오라고 불렸다.
그 후 마카오는 금, 은, 도자기, 아편 등의 중개 무역과 기독교 포교의 기지로서 번영했다. 1887년에는 포르투갈과 청나라 간에 맺은 조약에 따라 정식으로 포르투갈령이 되었지만, 영국이 홍콩을 식민지로 경영하면서 무역항은 쇠퇴했다.
1966년 폭동을 계기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기 시작했다. 1986년부터 중국에 마카오를 반환하는 교섭이 시작되어, 반환 시기를 1999년 12월 20일로 하는 협정이 1987년 중국과 포르투갈 사이에 체결되었다. 1993년 3월 "마카오 특별행정구 기본법(澳門?行政區基本法)"이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全國人民代表大會)에서 채택되어, 1999년 12월 20일에 포르투갈로부터 반환되었다. 1999년까지는 총독이 최고의 통치 관직이었다.
현재의 마카오는 일국양제를 정한 기본법에 의해 2049년까지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경제 체제를 지속하는 것이 보장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