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촌에서 해마다 음력 정월대보름이 되면 아침 일찍부터 높은 지대와 낮은 지대에 사는 사람으로 갈려 윷판이 벌어졌다. 이긴 쪽에
그 해 풍년이 든다고 믿었기 때문에 윷놀이의 결과는 마을 사람들의 큰 관심사였다.
기록에 따르면 윷놀이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전해오는 한국 고유의 민속놀이로 대개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행해진다. 한 설명에 따르면 윳놀이는 부여족(夫餘族) 시대에 다섯 종류의 가축을 다섯 부락에 나누어주어 그 가축들을 경쟁적으로 번식시키는 일에 비유해서 만들어진 놀이라고 한다. 그래서 도는 돼지, 개는 개, 걸은 양, 윷은 소, 모는 말에 비유된다.
윷판에서 한번에 움직이는 거리도 이 동물들의 특성에 따라 정했다. 몸 크기의 차이를 보면 개보다 양, 양보다 소, 소보다 말이 더 크다. 돼지는 개보다 몸집이 크지만, 걸음의 속력이 제일 느리기 때문에 ‘도’에 해당한다. 돼지가 한발자국의 거리를 뛰는 사이에 말은 돼지의 다섯배 정도 거리를 가는 셈이다.
한편 윷놀이는 확률의 원리를 배울 수 있는 좋은 학습놀이이기도 하다. 어떤 사건이 일어날 확률(p)은 ‘어떤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로 정의된다. 그러므로 도가 나올 확률은 4/16=1/4, 개는 6/16=3/8, 걸은 4/16=1/4, 윷과 모는 1/16이다. 즉 ‘개·도(걸)·윷(모)’ 순으로 나타난다. 확률로도 개가 가장 자주 나오는 것을 보면 개가 제일 빨리 달리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확률값은 사실 문제점이 있다. 윷짝 하나의 앞과 뒤가 나타날 확률을 똑같이 1/2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윷짝의 모양은 곡면과 평면으로 구성된다. 그나마 윷짝은 정확한 반원 형태가 아니라 반원을 넘어 아래가 약간 잘려진 불룩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곡면이 나올 확률과 평면이 나올 확률이 다를 수밖에 없다.
고려대학교 통계학과 허명회 교수는 1995년 논문에서 윷짝의 독특한 모양을 고려해 새로운
확률 값을 제시했다. 그는 ‘윷이 바닥에 닿은 순간 어느 면이 나올지 정해지고 더 이상 구르거나 튀지 않는다’는 가정 아래 윷짝의 독특한 역학적 운동을 파악했다. 윷 단면인 반원의 무게중심을 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반원의 회전운동을 계산했다. 윷짝이 완전한 반원이 아니라는 점도 고려했다.
그 결과 평면이 위로 나올 확률과 곡면이 위로 나올 확률의 비율은 6 : 4 정도였다. 평면이 위로 나올 가능성이 더 크다는 의미다. 허교수는 이 값을 토대로 ‘걸-개-윷-도-모’의 순으로 확률이 작아진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보다 정확한 확률값을 얻으려면 고려해야 할 사항이 더 있다. 윷의 실제 운동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 예를 들어 바닥면과의 마찰과 충격 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이처럼 정확하게 윷의 운동을 계산한다면 과연 돼지가 소보다 느리다는 결과가 나올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 장작과 밤알 모양의 윷가락
윷은 박달나무나 붉은 통싸리나무로 만드는데 모양에 따라 주로 ‘장작윷(가락윷)’과 ‘밤윷’의 2가지로 구분된다. 중국의 관서·관북 지방에는 ‘콩윷(팥윷)’이라고 해서 검정콩이나 팥알 2개를 쪼개 4개로 만들어 노는 것도 있다.
장작윷은 지름 3cm 정도의 나무를 길이 15cm로 잘라 이를 둘로 쪼개 4개로 만든 것이다. 장작윷은 부녀자들의 경우 주로 안방에서 요나 담요를 깔고 놀며, 남자들은 사랑방이나 마당 또는 큰길가에서 가마니나 멍석을 깔고 높이 1m 정도로 던지면서 즐겼다.
이에 비해 밤윷은 작은 밤알 크기로(길이 1.8cm, 두께 1cm) 만들어졌다. 밤윷은 주로 경상도 지방에서 사용하는데, 통상 간장종지 같은 것에 넣어 손바닥으로 덮어 쥐고 흔든 다음 속에 든 밤윷만 땅바닥에 뿌려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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