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최근의 일기를 펼쳐보니 이거야 말로 생생한
그를 향한 끝없이 애잔한 마음이 구구절절이 적혀있었다.
만일 이것도 그가 읽었다면 그야말로 암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에 대한 내 마음의 변천을 아무리 설명해도 다른 사람이 알 리 만무하고
결국 이런 것을 봐버린 봐서는 안 될 것을 봐버린 사람이 나쁘다.
나는 싱크대의 스테인리스 위에서 갈기갈기 찢긴 일기장을 태웠다
창문도 열어놓고 환기장치도 돌렸지만 연기는 실내까지 가득 찼다.
그래도 종이는 허무할 정도로 너무 쉽게타버렸다.
과거란 과거란 이 얼마나 쉽게 사라져버리는 것인가?
인간이 자칫 잘못된 병에 걸리면 금방 죽는 것처럼 아름다운 시집도 곤란한 일기장도
허무하게 금방 연기로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다만 그 안에 담긴 정념의 기억은 어디로도 도망가지 않고
태워지지도 않고 소실도 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중량감으로 묵직하게 인생의 짐처럼 매달려 있다.